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부모의 기대와 바람이 담긴 사람의 이름과는 달리 식물의 이름에는 자생하는 지역에 따라 해안이나 계곡, 골짜기, 냇가 등에서 자란다고 하여 갯버들, 갯질경이, 갯방풍 등으로 불리기도 하고, 고산지역에서 살기 때문에 두메양귀비, 두메투구꽃, 두메부추라 불리기도 하며 습한 골짜기에서 자라면 골아무개, 구름처럼 높은 곳에서 자생하면 구름아무개, 벌판에서 자라는 것은 벌아무개, 습기가 많은 곳에서 사는 식물에는 물아무개, 돌에서 자라는 돌아무개, 바위에서 자라는 바위아무개, 산에서 살면 산아무개, 섬에서는 섬아무개 등으로 불린다.


비슷한 종류가 많을 때는 진위를 가리면서 참나리, 참당귀 등 참아무개라 부르는가 하면 참아무개와는 달리 품질이 떨어지거나 모양이 다를 때는 개망초, 개다래, 개머루 등 개아무개로 불린다. 나도 같은 종류야 하면서 나도아무개로 불러달라는 식물이 있고 너도 나하고 비슷하구나 하면서 너도아무개로 부르기도 한다. 생김새를 나타내는 가는아무개, 갈퀴아무개, 긴아무개, 끈끈이아무개, 우산아무개 등도 있으며 식물의 색을 나타내는 금아무개, 은아무개도 있고 식물의 크기를 나타내는 큰아무개, 땅아무개, 왕아무개, 말아무개 등등 수많은 분류의 이름들이 있다. 때로는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밥풀꽃, 수염며느리밥풀 등 이름 뒤에 숨은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처녀치마, 소경불알, 개불알꽃 등과 같은 민망한 이름들도 있다.

 

또한 수많은 식물들 가운데 우리의 식탁을 장식하거나 약으로 먹는 것 중에도 흥미로운 이름의 식물들이 있으니 수레바퀴에 밟혀도 질기게 살아난다고 하여 질경이, 흰색의 꽃이 피었다가 노란색으로 변하는 금은화, 생강냄새가 난다고 생강나무, 고추잎 맛이 나는 고추나무, 뼈에 좋아 골리수, 닭의 벼슬을 닮은 계관화, 산에서 나는 약의 산약, 시름을 잊게 하는 망우초 등이 그것이다.

 

중풍을 예방한다고 하여 방풍나물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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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방풍잎>

 

 허균은 홍길동전 외에 수많은 작품들을 남긴 작가로 후세에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맛 칼럼리스트라 부르고 싶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품평서라 불리는 그의 문집 「성소부부고」속 <도문대작>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음식의 재료와 음식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용의 다양함은 물론이지만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그 시대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곳곳에서 나는 지역 특산물을 잘 분류하였으며 그 자료는 요즘 보아도 결코 녹녹하지 않은 훌륭한 것이다.

 

<도문대작>을 통해 알려진 것 중 유명한 것이 강릉지역에서 먹었다는 ‘방풍죽’에 관한 내용인데 방풍죽의 향이 얼마나 좋았으면 사흘이 지나서도 입안에서 방풍의 향이 가시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나는 방풍죽을 끓여 먹어보았지만 향은 좋았으나 사흘을 갈 만큼은 아니어서 아쉬웠으며 해풍이 없는 지역의 것이라서 그런가 하는 추측은 하지만 그 원인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하다. 해풍을 맞고 자라는 방풍나물이 상품으로 알려져 있어서 그런지 요즘은 제주도나 여수, 태안 등지의 해안가에서 많이 재배하고 있는 추세이다.

 

방풍죽에 대해서는 <도문대작>뿐만 아니라 <증보산림경제>에도 ‘이른 봄에 나는 방풍의 새싹으로 죽을 쑤면 그 맛이 매우 향미롭다.’고 기록되어 있고 그 외에 여러 고조리서에도 다루고 있으며 육당 최남선의 <조선 상식>에는 강릉의 방풍죽이 평양의 냉면, 진주의 비빔밥, 대구의 육개장 등과 함께 팔도의 대표 음식으로 소개되고 있으니 그 시대에는 꽤 사랑받는 음식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나물로 먹고 있는 방풍나물은 약재로 쓰이고 있는 중국의 방풍과는 다른 갯기름나물이며 그 뿌리는 중국의 방풍과 구별하여 식방풍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중국의 방풍이나 우리나라의 식방풍 모두 그 이름에 걸맞게 풍(風)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동의보감>에 방풍은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달고 매우며 36가지 풍증을 치료할 뿐 아니라 오장을 좋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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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풍나물 초회>

 

방풍나물은 고기를 먹을 때 생잎을 쌈으로 먹으면 그 향이 절정에 달하고 식감이 특별하지만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나물로 먹으면 은은한 향이 오히려 더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고추장 양념에 무쳐도 좋고 집간장으로 무쳐도 깊은 맛을 더해 주므로 아주 좋다. 혹 많은 양의 방풍나물이 있어 먹기에 부담스러울 때는 간장양념에 장아찌로 담가 먹어도 훌륭한 밑반찬이 된다. 허균이 잊지 못하는 방풍죽을 느껴보고 싶다면 흰쌀로 죽을 쑤다가 중간에 살짝 데친 방풍나물을 넣고 마무리한 방풍죽을 아침식탁에 올려보면 식구들의 하루가 온통 향기로울 것이다.

 

어느 곳에서나 쑥쑥 자라서 쑥이라 부른다

 

농사를 지어보니 쑥대밭이 농부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직 제대로 된 농부가 아니라서 그런지 밭에서건 들에서건 쑥만 만나면 그저 반가워 쪼그리고 앉는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과 함께 바구니를 들고 나가 쑥 한 줌을 캐어다 쑥버무리로 만들어 오후 간식으로 먹었다. 아직도 내 입안에서는 쌉쌀한 쑥 향이 맴도는 것 같다.

 

보릿고개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무슨 소리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옛날에는 보리를 수확하기 전 춘궁기를 쑥으로 연명하며 살았다. 먹지 못해서 얼굴에 누렇게 부항이 들면 쑥을 먹어 부항기를 가라앉히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쑥만 보면 배고프던 시절에 밥 대신 해먹던 밀가루로 만든 쑥버무리 생각이 난다. 쌀가루가 흔한 지금에도 밀가루를 묻히고 설탕대신 인공감미료(인공감미료가 몸에 좋지 않다는 것도 잊고 싶을 만큼 그리운 맛이므로)를 넣은 쑥버무리를 해서 먹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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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버무리>

 

쑥은 단군신화에 등장한 이후 식품으로, 민간약으로, 한약재로, 뜸의 재료 등으로 오랜 세월을 우리 민족과 같이 한 아주 중요한 식물이다. 한의학에서는 애엽(艾葉)이라 부르며 성질이 따뜻하고 그 맛은 맵고 쓰다. 간(肝), 비(脾), 신(腎)을 이롭게 하며 맵고 쓰고 따뜻하기 때문에 우리 몸의 하초를 데워 한습(寒濕)을 제거하므로 특히 여성에게 좋은 약이라 ‘어머니 풀’이라 불리기도 한다. 몸을 따뜻하게 하므로 여성의 생리를 정상적으로 해주며, 지혈지통(止血止痛)을 시켜주며 태아를 안정시키는 작용이 있다.

 

초봄에는 양기(陽氣)를 품고 태어난 어린잎을 채취해 애탕국을, 좀 자라면 쑥떡이나 쑥전, 쑥버무리 등으로 밥상에 올리며 때로 차로 덖어 마시기도 한다. 그래도 아쉬우면 뜯어다 데쳐 뭉친 후 냉동 보관 해 두었다가 비가 오거나 좀 쓸쓸한 날에는 꺼내 찹쌀가루에 섞어 쑥개떡을 만들어 먹는다. 이런저런 음식들을 해먹다가 쑥쑥 자라 10cm 이상 크면 오월 단오에 잘라 말려두었다가 약재로 다려 먹기도 하고 뜸을 뜨는 재료로 사용한다. 또 더 자라면 낫으로 베어다 옷감에 물들여 여성들의 속옷으로 만들어 입으면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디 방풍나물이나 쑥 뿐이겠는가

 

조상들의 기지와 해학과 지혜가 담겨 있는 식물의 이름들이 방풍나물이나 쑥 뿐이겠는가. 재미있는 이름의 수많은 식물들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니 자꾸 잊어버려 안타깝던 식물의 이름이 외우기 쉬워지고 그 약성 또한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흥미로운 공부도 하고 그 결과를 식탁에 올리다 보니 음식이 약이 되어 가족의 건강이 덤으로 따라오는 것을 느낀다.

방풍죽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는 허균의 <도문대작> 서문에는 ‘먹는 것에 너무 사치하고 절약할 줄 모르는 세속을 경계하자.’는 뜻을 담았다고 쓰여 있다. 요즘처럼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 조상들의 건강한 전통 식생활을 버리고 외국에서 가져온 건강하지 못한 빠른 먹을거리에 열광하는 후손들을 우려한 성찰은 아니었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해본다.

 

내 손이 닿는 곳에서 얻을 수 있는 제철의 식재료가 약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