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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우리의 몸에도 봄이 온다. 

 

겨울은 끝이 없고 봄은 올 것 같지 않더니 어느 사이 바로 내 옆에 봄이 온 것을 느낀다.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도 살랑거리며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도 잠에서 깨어나고 대지의 곳곳에서는 새싹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인체도 자연의 일부이므로 겨울동안 활동을 줄이고 에너지 소모를 줄이려 웅크리고 있던 몸을 잦은 기지개를 켜며 일으키게 된다.

 

인체가 활동을 활발하게 한다는 것은 체내의 신진대사가 왕성하게 되고 있다는 의미와도 같으며 이때부터는 오장육부 중에 간이 하는 역할이 늘어나게 된다. 오장육부의 임금은 심장이지만 봄철엔 간이 임금노릇을 하게 된다. 인체에서 간이 하는 역할은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나뭇잎들을 흔들어 나무에 봄기운을 전하는 것처럼 우리의 몸에 봄기운을 불어넣으며 인체 곳곳에서 기운을 잘 통하게 하는 것이다. 꽁꽁 얼어붙었던 땅에서는 아지랑이가 올라가면서 양기를 퍼뜨리고 인체도 덩달아 양기를 북돋우게 된다.

 

양기를 북돋우고 긴 겨울동안 쌓인 몸 안의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이 봄에 간이 하는 역할이다. 간의 그런 역할을 한의학에서는 소설작용이라 하는데 이 소설작용을 돕고 맺힌 것을 풀어주며 가라앉는 기운을 위로 끌어올리는 일을 하는 것이 매운맛이다. 그래서 봄이 시작되는 절기인 입춘에는 매운맛을 가진 나물 다섯 가지를 골라 먹어온 풍습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봄을 건강하게 나기 위하여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입춘오신반’을 나눠먹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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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따뜻하고 매운맛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오히려 몸에 화를 조장하여 건강을 해치게 되므로 이때는 간의 열을 내려주는 쓴맛이 필요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부분의 봄나물이 맵고 쓴 맛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많으므로 맵고 쌉싸름한 나물들을 챙겨 먹음으로 해서 자칫 나른해지기 쉬운 봄을 건강하게 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좋은 기운을 온몸에 퍼뜨리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려면 필요한 에너지를 수렴하는 간(肝) 본연의 맛은 신맛이다. 새콤한 맛을 먹으면 입 안에 침이 생기면서 몸이 움츠려지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 몸이 자신을 위하여 기운을 안으로 모으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지나친 신맛은 간 기운의 소통을 막아 뭉치게 하여 사람을 급하게 만들고 성내게 하며 오히려 건강을 상하게 한다. 그럴 때 급하고 성내는 것을 진정시키고 누그러뜨리는 맛이 바로 단맛이다.

 

<천금요방>을 저술한 당나라의 유명한 양생가 손사막도 봄에는 신맛을 줄이고 단맛을 많이 먹어 비장을 보해야 하며 인체가 적절히 운동을 하면 병이 침범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봄에는 산책을 자주 하고 맵고 쌉싸름한 햇나물들을 새콤달콤하게 요리하여 먹으면서 건강을 지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 방울의 물로도 잔은 넘친다.

 

봄에 춘곤증을 물리칠 수 있는 식물들로 미나리, 냉이, 쑥, 돌나물, 취나물, 두릅 등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중에 으뜸을 꼽으라면 단연 부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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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는 한의학에서 구채(韭菜)라고 하는데 양기를 북돋워 준다하여 기양초(氣陽草)라고도 부른다. 매운 맛을 가지고 있으며 그 성질이 따뜻하고, 동의보감에서는 간과 신장을 이롭게 하는 식물로 분류하고 있다. 신(腎)이 허(虛)해서 오는 양기 부족이나 위가 냉해서 오는 복통[胃寒腹痛]에 효능이 있음은 물론 허리와 무릎이 시고 아픈데도 효과적이며 해독하는 작용도 뛰어나다. 그러므로 봄에 막 올라오는 부추를 잘라다가 밥상에 올린다면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우리의 몸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날 것임에 틀림없다. 

부추의 씨도 가구자(家韭子) 또는 구채자(韭菜子)라 하여 약용으로 사용한다. 정력을 강화하고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하여 허리가 아픈 증상이나 무릎을 튼튼하게 만드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 또 정액이나 소변이 쉽게 흘러나오는 것을 억제하는 효능도 가지고 있어서 밤에 소변이 잦거나 야뇨 증상이 있는 경우나 아랫배가 차거나 뼈가 시리고 아픈 증상에도 쓰인다.

  어린 시절 외가에 가면 뒤뜰 장독대 돌 틈마다 하얀 꽃을 달고 있는 부추를 볼 수 있었다. 바지런하셨던 할머니께서는 한 뼘 정도 자라면 잘라다 집에서 담근 간장에 무쳐도 주시고, 오이가 나올 때면 오이소박이로 만들어 주셨고, 비오는 어떤 날에는 전을 부쳐 주기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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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셨던 많은 음식들 중 결코 잊지 못할 음식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부추죽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어느 무렵이었는데 배가 아프고 설사가 나서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을 들락거리게 되었다. 그런 내게 할머니께서는 파란 색이 예쁜 부추죽을 쑤어 주셨는데 그 죽을 먹고 한잠 자고 일어나니 말끔하게 나았었다. 그날 이후로 부추죽은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약이 되는 음식’이 되었다. 한글도 모르는 할머니께서 뒤란 장독대에 심으신 부추가 실은 ‘가정상비약’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시도 때도 없이 아무나 먹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약을 꼭 가려서 먹어야 하듯이 약성이 강한 음식일수록 먹지 않아야 할 사람과 먹지 말아야 할 때를 가려야 한다. 언젠가 바쁘게 지내면서 입에서 당기고 몸에 좋다며 가리지 않고 마구 먹은 음식으로 혹독한 값을 치은 경험이 있다. 봄을 타서 그런지 입맛이 없던 내 눈에 막 올라온 부추가 너무 맛나게 보여 베어다가 나물로 무쳐 밥을 비벼 잔뜩 먹고는 탈이 났던 것이다. 뒷머리가 당기면서 아프기 시작하더니 온몸에 열이 나고 어깨는 내려앉을 듯 무겁고 옆에서 말을 거는 사람에게 이유도 없이 화를 냈었다. 병원에서도 이유를 모른다하여 곰곰 생각해보니 그 무렵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입이 마르고 찬물을 찾았던 내가 먹은 부추가 화근이 되었던 것이었다.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잔을 넘치게 하듯 우리 몸에 좋지 않은 기운이 잔뜩 쌓였을 때 먹는 음식 하나만으로도 큰 화를 부를 수 있으니 정말 조심할 일이다.

 

그러나 장독대에 부추를 심어놓고 먹는 사람과는 양기를 논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으니 부추요리 없는 봄의 밥상은 무척 나른할 터, 제대로 알고 먹는다면 약보다 부추다.

 

 

보약과 독약 사이, 원추리로 오간다.

 

원추리 어린 싹. 칼로 도려다 끓는 물에 데쳐 초고추장에 조물조물 무쳐 먹거나 된장찌개로 끓여 먹으면 연초록의 찬란한 봄 한 자락이 입안으로 달려드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나는 이제 원추리가 무섭다. 작년 이맘 때 원추리나물을 해먹고 탈이 나서 반쯤 죽다 살아났기 때문이다. 원추리나물을 먹고 한두 시간쯤 지나자 속이 메슥거리고 배가 아프더니 구토와 설사로 먹은 것 모두를 몸 밖으로 배출하고 다음날에나 정상으로 돌아왔었다. 증상이 막 시작되었을 땐 원추리 중독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먹은 것들을 이리저리 되짚어보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결코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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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과의 달고 서늘한 성질의 원추리는 한의학에서 훤초(萱草), 금침채(金針菜), 황화채(黃花菜) 등으로 불리며 임신한 여자가 이 꽃을 가지고 다니면 아들을 낳는다고 해서 훤남초(萱男草)라고도 불린다. 조선의 학자 신숙주는 ‘가지에 달린 수많은 잎처럼 일이 많지만 원추리로 인하여 모든 것을 잊었으니 시름이 없노라’고 원추리 꽃을 예찬했으며, 숙종 때 실학자인 홍만선은 농서(農書)인 「산림경제」를 통해 ‘시름을 잊게 하는 원추리는 '망우초'로 불리기도 한다.’고 했다. 당태종 이세민이 자신의 어머니가 생전에 머물던 집 뜰에 원추리(훤초-萱草)를 가득 심었던 것에서 유래해 어머니를 ‘훤당(萱堂)’이라 부르기도 한다.

 

원추리는 간과 신장에 이로운 식물이다. 몸의 열을 내려주고 불필요한 수분을 배출해주며 답답한 가슴을 풀어주고, 소변을 이롭게 하기도 한다.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잠을 잘 못자는 증세에도 효과적이다. 임신 중의 태동불안, 빈혈, 술로 인한 황달, 치질성 혈변 등에 좋다. 전초 모두 약용으로 쓸 수 있으며 원추리에 함유된 영양분은 토마토보다 높다는 보고도 있다. 또 생리기능을 증강시켜주고 머리를 검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항암효과도 있어 건강한 사람의 암 예방에도 좋다.

원추리 꽃인 훤초화(萱草花)도 소변이 붉고 찔끔찔끔 나오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열이 나는 증상을 치료하는 등 원추리와 비슷한 효능이 있다.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증상에는 그 효과가 현저하다고 알려져 있다. 쪄서 말린 원추리 꽃을 넣고 끓이는 된장찌개나 꽃밥 등 여러 음식에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신선한 원추리에는 독성이 있으며 성장할수록 독성이 많아지므로 어린 싹을 식용하는 것이 좋다. 원추리 생것을 먹어 중독이 된 경우 대개 30분에서 4시간 쯤 지나면 속이 메스껍고 토하며, 가스가 차고 복통이 있고 설사를 한다. 원추리 유독성분은 물에 잘 녹으므로 반드시 끓인 다음 물에 헹군 후 복용하는 것이 좋다. 원추리의 유독성분(콜히친)은 10mg 이상 섭취하면 중독이 되고 40mg 이상 섭취하면 드물게는 사망에 이르기도 하므로 정말 조심해야 한다.

 

원추리나물을 먹지 않고 봄을 보내기란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작년의 그 혹독한 경험 때문에 올봄에도 원추리나물을 밥상 위에 올릴 수 있을지 아직 장담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새로운 계절에 대한 희망을 전달하는 봄의 전령인 원추리로 어수선한 세상의 시름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