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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엘리트와 민중의 역할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혁명으로 세상의 어둠을 걷어낸 뉴턴이 스스로의 위대함과 동시에 겸손을 표하면서 한 말이다. 이 말은 뉴턴뿐 아니라 세상을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어느 누구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어느 역사든 위대한 승리자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아무의 도움도 없이 순식간에 세상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 뉴턴에게 어깨를 내준 거인들은 누구일까. 과학사를 들여다보면, 관점에 따라 중요도는 다르겠지만, 어느 정도 그들의 윤곽이 드러난다. 시간적으로 가까이로는 갈릴레이, 데카르트, 베이컨, 케플러 그리고 지동설을 처음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일 것이다. 좀 더 멀리 가면 아랍의 과학자들,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 플라톤, 피타고라스, 탈레스 등이 떠오른다.

이들은 분명 거인들이요 또한 과학사에서 큰 획을 그은 위대한 엘리트들이다. 그러나 그들도 분명 누군가의 어깨에 올랐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과학의 전체 역사는 거인과 엘리트들의 빈틈없는 이어달리기와도 같은 것일까. 우리는 과연 그 거인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 과학이 이룩한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술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야마모토 요시타카라는 재야 과학사학자가 있다. 그는 1960년대 도쿄대학 물리학과를 마치고 일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유가와 히데키의 부름을 받을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박사학위 과정 중에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전공투 의장이 되었고 이 때문에 감옥에 가기도 했다. 그 후 홀연히 학계를 떠나 학원 강사를 하면서 과학사의 빠진 고리를 메우는 연구로 ‘16세기 문화혁명’이라는 중요한 저술을 내놓았다.

그의 주된 질문은 17세기 위대한 과학혁명은 어떻게 가능했는가였다. 그는 “그리스 전통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실험이나 실용적 수학이 16세기의 기술자, 예술가, 상인들에 의해 등장했다. 또 도서관에서 책만 파던 학문에서 현실적 경험을 중시하는 실증적 학문으로 전환돼 갈릴레이와 뉴턴의 혁명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한다. 결국 그리스 전통과 그리스 저작들을 중심으로 파고든 르네상스만으로는 정량적 과학이라 할 수 있는 뉴턴 혁명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클리퍼드 코너는 공대를 나와 군수업체인 록히드항공에서 일하다가 과학의 군사적 속성을 알게 되면서 반전 운동과 좌파 운동에 투신했으며, 늦깎이로 대학원에서 과학사를 공부하며 과학에 기여한 평범한 사람들의 증거를 모았다. 저서 ‘과학의 민중사’에서 코너는 ‘뉴턴이 더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거인들의 어깨에 앉아 있었던 덕분이 아니라 수천 명의 장인과 많은 모르는 사람의 등 위에 서 있었던 덕분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턴 이후에도 과학은 기술에 힘입은 바가 크다. 중요한 분야인 열역학은 산업혁명 당시 과학적 지식이 없었던 장인들이 만든 열기관을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며, 위대한 화학자 라부아지에도 많은 양조업자 증류업자의 등을 필요로 했다. 과학과 기술이 본격적으로 결합하여 서로를 끌어올리기 시작한 것은 20세기부터라 할 수 있다.

자본과도 깊숙이 결합한 지금의 과학기술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는 과학사에서 엘리트들에게 밟고 설 등을 내어줄 사람들이 설 자리는 없어 보인다. 그들은 철저히 소외되었고 과학은 자본의 ‘선택’을 받은 소수만의 안식처가 되었다.

요시타카가 학계에 남아 소립자 연구에 매진했다면 노벨상을 수상할 수도 있었겠지만 과학혁명으로 가는 든든한 다리를 놓았던 16세기의 위대한 민중의 존재는 잊히고 과학혁명은 뉴턴과 소수의 거인만이 이룩한 업적으로 인식되고 있을 것이다. 거대 기술에 적용될 수 없는 주제들은 이처럼 재야과학자들의 몫일뿐인 것이 현실이다. 지금의 과학 엘리트들이 과학기술이 초래한 문명의 위기 속에서 생존을 위협받는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소외된 민중 속에서 실천적으로 축적되어 온 정신적 물질적 지혜들과 더불어 과학이 새로운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 역사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지순협대안학교 교수·‘시민의 물리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