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과학에세이>에 쓴 칼럼입니다.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200107.22026001685&kid=022000


[과학에세이] 셰익스피어 비극과 열역학 제2 법칙 /유상균


물리학자이자 소설가인 찰스 퍼시 스노는 저서 ‘두 문화’에서 한 일화를 소개한다. 그는 과학자들의 무지를 비웃는 ‘교양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열역학 제2 법칙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했다. 싸늘한 반응이 돌아오자 그는 “이 질문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습니까?’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스노는 인문학과 과학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장벽을 허물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견줄 수 있는 과학의 법칙으로 열역학 제2 법칙을 선택했다.

물리학의 핵심 개념인 힘과 에너지에 비해 결코 그 중요성이 뒤지지 않는 개념 중 엔트로피(entropy)라는 물리량이 있다. 이것은 상황이 얼마나 무질서한가를 나타내는 값이다. 그리고 열역학 제2 법칙은 ‘완전히 외부와 차단된 상황에서의 엔트로피는 감소할 수 없다’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 외부에서 어떠한 영향을 주지 않는 한, 자연은 점점 더 무질서한 방향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청소하지 않는 방이 저절로 정돈되지 않는 것과 같다. 엔트로피가 계속 증가하면서 결국 도달하는 곳은 최대한의 무질서 상태이다. 이것은 곧 ‘죽음의 상태’이다.

여기서 우리는 역으로 ‘생명’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떤 것일까? 열역학 제2 법칙이 이끌어가는 최대 무질서라는 목적지로 끌려가지 않고 저항하는 것이다. 물론 결국에 가서는 굴복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이 저항은 생명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반드시 외부 에너지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우리가 호흡을 하고 먹어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도움이 끊기는 순간 제2 법칙은 가차 없이 작동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다.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미생물이든 인간과 같은 고등 동물이든 생명이라면 맞닥뜨려야 하는 운명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무질서해지려는 자연의 섭리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것이니만큼 고통스럽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을 유지시키는 외부란 무엇일까? 궁극적으로 태양이 보내주는 에너지이다. 지구처럼 생명이 번창한 행성은 이웃 행성들과는 달리 물질의 끊임없는 순환이 일어난다. 태양에너지를 원천으로 하여 지구의 생명과 주위 환경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순환이 각각의 생명을 살아 있게 만든다.이것이 지구 차원에서 유지되는 질서요, 지구 전체가 열역학 제2법칙에 저항하는 메커니즘이다.

100여 년 전만 해도 지구의 그 어떤 생명도 거대한 물질의 순환을 교란시키지 않았고 또 그럴 능력도 없었다. 우리가 숨 쉬는 산소는 이산화탄소로 배출되어 식물의 광합성에 이용되며, 우리가 먹는 음식은 배설물로 나가 식물이 자라게 하는 양분으로 활용되었다.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낸 많은 물건도 쉽게 자연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순환을 크게 방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인간은 전례 없는 과학기술을 앞세워 자연의 질서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대규모 산업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의 일상에서도 비닐,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이 쏟아져 나와 버려지기 시작했다. 지구의 관점에서 볼 때 현대는 찬란한 인류문명의 시대가 아니라 그야말로 순환 고리를 끊는 쓰레기들로 넘쳐나는 시대인 것이다. 작금의 상황을 초래한 것은 기술혁명이지만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다. 끊임없는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속성이 낳은 결과물은 쓰레기뿐이다. 작년에 입었던 옷도 패션이 지난 쓰레기가 된다. 소비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는 결국 우리의 터전인 지구를 죽음으로 이끌고 말 것이다. 지구의 죽음이란 곧 생명의 죽음을 의미한다.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비극은 시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인간이 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다. 열역학 제2 법칙은 지구적 위기에 처한 인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공멸을 피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명확히 말해준다. 열역학 제2법칙이 셰익스피어의 작품 못지않게 모두에게 필요한 이유이다. 나아가 과학이 인문학 못지않게 모두에게 중요한 이유다.

지순협대안학교 교수·‘시민의 물리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