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면초가> 목판화 1981년 @김봉준  
▲ <두렁> 목판화 1983년 @김봉준

이 글은 지난 8월 13일 제주도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국민족미술인협회 평화미술전- 한국미술 대토론회에서 발표된 김봉준 씨의 발제원고입니다. 2차례로 나눠 싣습니다. 본문에 수록된 모든 작품은 김봉준 씨의 작품입니다. <편집자>

이 글을 쓰려니 유난히 세월의 소회가 밀려옵니다. 동고동락 했던 전국의 미술인들과 오랜만에 특별히 만나는 자리라서 더 그런가 봅니다. 미술을 하겠다고 나섰던 한 소년은 어느덧 장년도 다 가는 세월 앞에 섰습니다. 민중미술로 시작한 우리 미술의 길은 고행을 감수한 길이었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지난 세월이 무상하고 세속의 명리가 구차해서 산골마을로 들어간 지도 어언 17년이 된 산골 화인입니다. 요즘같이 사회가 혼란하고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는 세상에는 이곳 깊은 산골까지도 풍진이 밀려옵니다. 늘 흔들리는 것이 삶이라지만 우리 미술인은 무엇으로 삶의 중심을 잡으며 살아갈 것인지요? 다시 세상에 묻습니다. 보잘것없는 산골장인은 위기의 시대 흔들리는 삶과 예술 앞에서 다시 중심잡기를 해봅니다.

저 '80년대 민중미술시대에도 우리네 삶과 예술은 중심을 못 잡고 흔들렸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조금도 편할 날 없는 위기의 나날 같습니다. 사회가 안정되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생존갈등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경제의 불안 때문입니다. 지금 사회의 위기의 핵심은 민생의 위기입니다. 빈부의 양극화, 국가제도의 소수독점화, 소통의 부재로 요약되는 국가운영이 민생을 위기로 몰아갑니다. 문화예술계도 마찬가지로 빈부, 제도, 소통에 있어서 오랫동안 갈등과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갈등은 생존적 갈등과 가치적 갈등이 중층적인 갈등입니다. 앞으로도 극심한 갈등을 안고 가는 사회는 지속될 터인데 대립과 갈등이 상시화 된 사회에서 미술인들은 앞으로도 스스로 각자 알아서 생존방식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위기 속에서 생존도 스스로 모색한다는 말이고 투쟁 너머 창조적 대안세계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술인이 능동적으로 살아야 창조적 대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삶의 방식, 예술인의 생존양식, 미적 가치 정립에 있어서 모두 능동적인 것을 말합니다. 대립과 갈등이 상시화 된 사회에 자기중심을 세우고 능동적으로 사는 방식을 찾고자 함입니다. 삶의 능동성 없이 예술의 창조성도 없습니다. 한국사회는 아직도 흑백논리로 극단화되어 문제를 너무 단순화, 대상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미 들어와 있는 다양한 현실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치열하게 자기의 중심을 창조하며 대화하는 문화예술풍토가 필요할 것입니다. 저는 이번 글 '한국미술 다시 중심잡기'는 시작도 끝도 생존과 가치 간에 균형 잡는 삶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멋진 삶의 구현이 중심입니다.

이 위기의 시대는 좌절하지 않고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한국사회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정치도 진보세력과 중도개혁세력이 연대하여 정치개혁을 해야 가능합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개혁은 진보민주정치세력, 시민단체, 풀뿌리운동이 모두 힘을 모아야 겨우 되는 것 같습니다. 정치적 다양성을 서로 인정하되 위기를 공감하면서 현실적 목표로 연대하자는 정책연합이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지난 경기도 교육감선거에서의 승리처럼 진보세력과 중도개혁세력의 연합노선에 새 희망을 보게 됩니다.

지난해 촛불정국은 진보민주세력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진보정치세력 안에서도 광장을 지키지 못하고 거리시위투쟁으로 돌입한 것을 뼈아프게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진보정치세력이든 노동운동이든 시민단체든 운동권의 자기주장을 앞세운 채 시위로 나갔다는 반성입니다. 촛불소녀의 처음처럼 평화광장으로 지켰어야 한다는 것은 성숙한 문화를 지켰어야 한다는 것의 다름 아닙니다. 평화문화로 시민과 끝까지 함께 했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예술계에 던졌던 문제도 광장의 외면이란 점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30여년 전 만든 '아침이슬' 같은 노래(훌륭하긴 하지만)를 아직도 불러야 했던 초라한 광장문예였습니다. 그나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없었다면 초라하기 그지없었을 겁니다. 시민이 원하는 미적 충족감에 부응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한국예술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기도 합니다.

미술이 대표적입니다. '80년대 민중미술시대에서 별로 나아가지도 못했습니다. 왜 촛불광장에 그토록 과거 변혁운동을 주창하던 '민족민중미술인'들은 실천의 기회를 외면했을까요. 말로만 외쳤던 것이고 전시장에서 대접받는 화가로 길들여져 버려서 그런 건 아닌지 반성해봅니다.

진보운동권은 성급하게 거리 시위로 나갔고 낡은 레코드처럼 과거 운동가요만 흘러나왔습니다. 초라한 시민문화의 광장은 지켜지지 못한 채 썰렁하게 주인 없는 광장으로 경찰차벽에 가로막혀버렸습니다. 우리 문예인은 87년 이후의 시민이 최대로 참여했던 촛불광장에서 놀 줄도 몰랐습니다.

결국 문화입니다. 시각예술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새로 나타나는 촛불광장의 시민적 요구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국예술이 시민과 별 공감을 이루는 노력을 게을리 한 결과입니다. 특히 수도권 예술은 '관공미술'의 자칭 현대미술논리에 포섭되었고 상업화랑의 시장만능주의를 심화시켜 왔던 결과 거리와 광장과 생활공간에 적응하지 못하게 훈습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거리의 광장에서 시민의 새로운 욕구인 행복추구권, 생명권적 욕구를 충족할 예술생산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회과학이 이론과 현실 사이에서 시민의 새로운 흐름을 못 따라갔다고 실토하듯이(김호기- 중앙시평 2009,8,5) 예술은 시민의 새로운 리비도를 충족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시민운동가의 자괴감은 '광장을 지키지 못하고 시위가 되어버렸다.'로 나타나지만 우리 예술인은 '시민과 공감할 정서형식을 준비하지 못했다.'라는 자괴감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분명히 시민의 꿈을 정서형식화 하는 부단한 노력을 게을리 했습니다. 촛불소녀와 아줌마부대들과 평범한 가족들과 젊은 청년 넷티즌들과 어울려 놀 방법을 몰랐던 한국진보예술의 취약성을 그대로 노출한 강팍한 광장시대였습니다.

이제 한국미술, 민중미술, 민족미술, 지역미술, 노동자미술, 여성미술, 진보미술을 표방하는 그 어떤 노력도 '촛불광장'을 비켜서서 미래를 전망하기란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광장문화에 적응하고 공감할 시각적 정서형식이 나와야 하는 때 같습니다. 이는 민중미술시대와 같으면서도 다른 아날로그 혼과 디지털 디자인의 탁월한 융합일 것입니다. 이제는 민주화 투쟁시절 운동권 정서도 뒤쳐져버렸고 기실 짝퉁에 불과한 형식주의 관변 현대예술도 시민정서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이 시대에 맞는 미술의 준비는 한국미술의 미래의 희망이자 생존의 사활을 건 과제 같습니다. 우리 미술운동이 시민 광장에서 연대적 소통에 필요하고 민간의 생활에 공감대가 되지 않는다면 누구를 위한, 누구의 미술이기를 바랄 수 있을까요. 우리는 꿈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유영모 선생이 말씀하셨다는 꿈틀, 시민의 꿈을 틔우고 담는 틀인 '꿈틀'을 한국미술로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들의 희망입니다.

개체 중심의 문예

나와 너, 시대와 시민의 꿈을 틔우고 담는 꿈틀을 만드는 창조적 미술인들이 우리 미술의 중심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며 시민과 소통하고 제도화하며 소득을 만들어 예술인 스스로 살리고 서로 살리는 새로운 예술창조를 하는 미술인을 예의 주시하기 바랍니다. 예술인에게서 창작은 생명입니다. 모방과 모사는 예술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학습과 수련이지만 창작은 학습을 뛰어 넘는 자기부정을 통한 새 긍정입니다. 학습과 창작을 엄격히 구분하고 새로운 창작에는 아낌없는 찬사와 격려와 비평을 나누는 문화 나눔이 미술계를 성숙시킬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과 가치를 가진 창작예술의 풍토와 교양을 나눌 수 있을까요.

첫째, 자기의 성찰입니다. 미술비평과 미학은 미적 현실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설득력 있는 전망을 내놓았는가. 민중미술은 바라던 대로 토착화와 세계화를 동시에 성취(성완경 민중미술론)하기 위한 문화 나눔을 지금 계속 하고 있는가. 형식적 모방, 미숙한 동어반복, 생활공동체에 착근하지 못하는 자기들끼리 미술, 포섭된 매너리즘 미술을 벗어나려는 자기성찰이 필요합니다.

둘째, 우리의 긍정입니다. 지역민족미술인협회, 전국민족미술인협회를 20여년 이끌고 왔으면 이제는 우리가 만들고 소속한 단체에 대한 자긍심을 서로 만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상호긍정과 소통, 조직의 순환으로 우리의 수고와 성과를 살려냅시다. 잘 된 것을 밑천 삼고 잘 못된 것은 극복하며 시대의 꿈, 시민의 꿈과 함께 성숙하는 희망의 조직을 갖춰가기 바랍니다. 조직을 청산주의로 보지는 않되 분명히 극복할 것은 극복합시다. 해소할 것은 해소하고 중심은 다시 세워야 할 것입니다. 한국미협과 다를 바 없는 중앙미술의 하향적 조직을 이제는 벗어나 지역미술과 직능미술의 수평적 연대 조직으로 변화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다시 하방 연대입니다. 창조적 대안으로 생활주민과 시민의 광장에 뿌리를 내리려 했던 민중미술정신을 승계합시다. 제도권 비제도권을 떠나서 지역생활지와 시민의 광장에서 협동하고 협업하는 창조적 민간문화, 풀뿌리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공교육시장, 생활미술시장, 의예품(儀禮品)문화시장, 싸이버 생활예술시장을 활용한 문화유통을 개척하는 일입니다. 새로운 문화의 물적 토대는 새로운 유통을 요구합니다. 사회적 기업을 문화예술에 적극 활용하고, 노동조합, 생협공동체의 생활문화 공간을 활용하며 광범위한 풀뿌리 시민조직과 같이 가는 길입니다. 민중운동시대, 시민단체운동시대가 개혁을 주도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풀뿌리 생활운동이 주동하는 시대로 나아갈 것입니다.

넷째, 중심가치의 정립입니다. 삶은 본래 욕구의 확장과 질서의 정립으로 균형과 긴장관계를 갖습니다. 가치는 욕구와 질서 사이의 균형을 정립하는 삶의 중심 개념일 것입니다. 어떤 가치를 세우느냐는 공동체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입니다. 그 중 평화의 가치는 인류의 보편적 소망으로 성숙해온 삶의 중심가치입니다. 인권, 민주, 반전 반폭력, 공동체 등으로 사회적 평화와 생활의 행복을 갈망하였으며 생명, 평화, 영혼에서 근원적 평화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삶의 중심가치인 평화의 예술적 모색이 시대의 필연입니다.

우리는 24년 전 민중미술을 시작하면서 한국미술의 허접한 실체에서 벗어나 창조적 자유를 찾고자 각기 모임을 가지고 활동했습니다. 지금 다시 처음처럼 돌아가 우리를 성찰 해보고자 합니다. 1985년 11월 민족미술인협의회 창립선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우리는 한국미술의 구조적 모순을 일찌기 간파하였습니다. 한국미술의 문제점과 극복 방향에 대해서 정확히 진단하였습니다. 화단의 정치권력과 영합주의, 화단 제도권의 독점적 지배, 현실의 자각을 기피한 제도권 미술양식, 오도된 미술교육, 순수주의 심미주의 예술지상주의 현대주의 등 형식주의 미학, 이를 자기보호의 논리로 만들어 정치 세력화한 미술집단 등을 직시한 바 있습니다. 당시 선언문에는 이런 모순에 투쟁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비장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또 묻습니다. "비판만 하면 다냐, 너희들 대안은 뭔데?"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대안 마련에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조직사업부터 대안부재였습니다. 자발적 미술모임들의 동력을 살리기보다 대규모 분과조직으로 해쳐 모여 시켜 지역과 직능을 무시한 중앙조직 건설에 치중하였습니다. 창작과 미술비평과 미술유통에서 대안 창출도 부진했습니다. 그 결과는 침체 일로입니다.

이제 미술계의 모순은 더 심화되고 미술환경은 더욱 열악할지도 모릅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위기가 이토록 우리네 삶을 근본부터 흔들어버릴 줄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한국국민의 경제 양극화가 더욱 더 심화되어 중산층은 붕괴되고 실업자가 수백만에 이르고 국민 과반수가 빈곤층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화단의 독점적 지배와 배제의 제도화는 더 심화되고 미술인들 생활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든 빈민층이나 다름없습니다.

한국미술의 이반 현상도 경제양극화에서 나타났습니다. 삶과 미술의 심각한 분리를 초래 했습니다. 먹고 사는 게 위중한 판에 예술이고 그림이고 안중에 들어오질 않게 된 것입니다. 화단의 그림 값은 폭락하고 화인아트 중심의 미술시장도 심각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시민이 함께 즐기고 공감하는 미술의 꿈을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화인아트, 목판화, 걸개그림, 생활미술, 공공미술, 미술교육, 미술시장, 미술제도 등에서 모든 것이 거꾸로 가는 시대 같습니다. 다시 뒤로 물러서서 긴 호흡을 가다듬으며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난 3년 전 부산에 연 미술인대회 발제자들의 발표에서도 한국미술의 우려와 활로에 대하여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심광현은 소통채널의 협애화, 미술교육의 축소, 미술비평의 영향력 약화, 창작자들의 무관심을 지적하며 미술계 환경의 악화를 우려한바 있습니다. 이 문제는 정권교체 이전부터 우려했던 오랜 고질병입니다. 김종길은 미술의 활로를 공공미술의 확장, 미술시장의 팽창, 개인 작업들의 다양성에 희망을 걸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물량적 팽창과 관변미술제도의 난립이고 모순의 확대재생산적인 면이 없지 않습니다. 우려와 희망에 앞서서 미술과 미술인이 왜 미술단체에 무관심해지고, 왜 시장에 접근이 어렵고, 왜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소외감을 깊게 느끼게 되었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계몽주의, 형식논리, 제도권 수혜의 눈으로 국면을 해석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문화예산은 국민의 정서적 요구와 다르게 낭비되고 독점되고 있습니다. 자기 세금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문예를 접하지 못하다니 주객이 전도 된 문화현상이 공공예술이란 이름으로 자행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시민은 시민 스스로의 소통방식과 규범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문학운동에서 창비, 문지, 실천문학, 문학동네 ñ하고보여준 끈질긴 대중과의 소통과 유통을 개척한 결과가 문학계의 판도까지 바꿔낸 문학의 성과는 우리와 비교됩니다. 우리는 있었던 그림마당민도 폐쇄시키고 수구적 미술제도와 체제 의존도를 높이다가 금융위기시대를 맞아 자생력을 점점 더 상실해버리게 되었습니다. 시대적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주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른 예술과 차이가 많습니다. 무료에 가까운 기금마련전에 헌신 했어도 우리 미술시장을 형성하는 데는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창비, 한살림, 대안학교, 주민자치조합들이 선각자들이었습니다. 미술에서 시민과의 소통부재, 유통시장 실종은 뼈아픈 반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시적으로 보면 한국형 근대의 불안은 압축형 경제성장에서 안정된 사회질서를 찾지 못하는 데 기인합니다. 다양한 시민의 욕구에 낡은 제도로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수구체제로는 안정된 사회를 이룰 수 없습니다. 낡은 제도는 개체와 집단을 분리하는 근대적 이원론에 기초합니다. 개인의 욕구와 자유의 확대에 비해 사회질서는 낙후하고 진보와 보수는 협상과 대화의 파트너가 아니라 배제와 비타협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질서와 욕구 사이의 갈등은 모든 분야에 걸친 전방위적 갈등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형식주의 예술이 정한 질서에 시민적 욕구는 충족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것은 미적 갈등, 정서적 갈등이기도 합니다.

어설픈 규범과 시민 자생적 가치 사이의 대립입니다. 자연과 인간의 이원론적 분리를 강요당한 제도권의 지식은 시민의 가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였습니다. 국가 법질서와 사회 시스템, 문화예술의 형식과 내용,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의 이론과 형식이 현실과 불일치합니다. 인간 사회와 비인간 사이의 완벽한 분리는 과학기술의 독립된 진화가 자연 지배를 가능하게 한다고 본 것은 근대주의입니다. 이 근대주의는 한국의 정치경제에 와서는 성공신화처럼 신념으로 굳어져버렸습니다. 거기에 예술도 미술도 덩달아 근대주의를 추종하였습니다. 자연과 인간사이의 소통의 길을 미적 질서로 개척하려는 고유의 노력을 부정하고 근대과학기술에 미적 감각을 빼앗겨버렸습니다. 근대적 과학기술과 이성주의에 포로가 된 예술입니다. 우리 예술인이 가장 애석해 해야 할 것은 권력의 상실이 아니라 감각의 상실입니다. 서양 지식인 중에도 스스로 만든 근대를 비판한 사람이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간 사회는 비인간 사물이 없이는 거의 한 순간도 지탱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비인간들과 분리된 인간들만의 사회가 있는 것처럼 상정하고 이것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기존의 사회과학은 자연과 사회의 이분법에 안주하는 근대주의의 또 다른 모습에 다름 아니다. 인간들과 비인간들이 역동적으로 결합되어 만들어지는 집합체 또는 공동세계를 연구대상으로 삼는 비근대적 차원의 사회과학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이다." (브뤼노 라투르-우리는 결코 근대인 이었던 적이 없다. 갈무리출판사)

우리는 지금 더 큰 화해와 사랑을 위해서 역설적이게도 구분되는 것, 차이를 분명히 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을 인정하되 우리 미술운동은 근대주의에 머무르려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우리미술운동은 탈근대의 대안까지를 창조하려는 맹아를 숙명적으로 품고 태어났습니다. 한국사회의 변화는 근대와 탈근대의 비동시적 동시성을 인정하면서도 탈근대의 창조적 길로 접어들고 있었던 시대에 태어난 미술운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대안을 창조하는 하방연대에서 우리는 희망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미술을 삶의 질 향상의 직능과 직업으로 당당히 개척하는 길이 필요합니다. 전교조의 참교육은 교육철학의 대안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대안교재와 가르칠 교사의 직업적 능력 재고가 먼저입니다. 준비가 안되면 방과후 미술교육으로라도 틈을 만들고 들어가야 합니다. 종합해서 정리하자면 한국미술의 희망을 찾는 길을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안문화로서의 탈근대적 미적 기술
생존 가능한 직능미술의 사회적 공공재화
시민의 정치주권운동과 더불어 문화주권으로써의 미술 표현권 확대
오랜 미래형 고전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정체성 있는 대안미술교육
작가와 수용자 직거래형 호혜 미술시장과 국제공정무역
미술언론의 독점적 지배를 벗어난 아래로부터의 문화창조
개체중심, 직능중심의 평화가치로 융합과 연대
/김봉준 화인 오랜미래신화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