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의 대동(大同) 경제사상

-이 무 성

동학은 대동(大同)세계를 펼치고자 하였다. 이는 사기위인(捨己爲人 : 사직인 이익을 버리고 남을 위한다)의 정신에 바탕을 두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요즘 자본주의 경제의 병폐의 대안으로서 회자되고 있는 사회적 경제와 그 맥을 같이 한다.

동학의 열렬한 활동가들은 대개가 사회경제적으로 차별을 받은 서얼출신들이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 해월 최시형 신사, 의암 손병희 성사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양반의 자세로서 이들이 서자출신이라는 이유로 관직 등의 진출이나 재산분배, 심지어는 제사 참석에서 조차도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농어민 등 낮은 신분의 사람들에게 사람이 곧 하늘이다 라는 인내천, 시천주 사상을 전파하는 동학교도들은 구세주와 마찬가지이었다.

한 실례를 들면 해월 최시형 2대교주가 청주의 한 동학교도 집에서 하루 밤을 신세지었다. 아침에 동학교도인 집주인에게 묻기를 ‘어제 저녁 베틀 짜는 분이 누구이신기요?’ 그러자 그 주인이 답하기를 ‘ 제 며느리입니다’. ‘베틀 짜는 분이 누구이신가요?’ 다시 해월 최시형이 물었다. ‘제 며느리입니다’ 집주인이 똑 같이 대답하였다. ‘베틀 짜는 분이 한울님이십니다.’ 해월 선생이 며느리를 한울님이라고 말씀하시었다.

1대 교주 최제우 선생은 여종 2사람을 며느리와 수양딸로 삼았다. 그 당시의 신분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이었다. 동학은 사람과의 관계를 대등하게 하였다.

이 평등관계가 서로 나눔과 오늘날의 상생경제로서 사회적 경제와 연계된다. 사회적 경제는 대가로서 시장교환관계를 비시장거래의 영역으로 이를 확장하는 것이 그 기본적인 원칙이다. 대중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동학시기에 전정, 군정, 환곡의 혁파와 탐관오리로서 부정부패한 관료의 척결이 이웃 재산을 권력 등 우월한 지위를 활용하여 빼앗는 것에 대한 목숨을 건 저항이었다.

오늘날의 갑, 을 관계의 부조리한 경제구조를 정의로운 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주장한 셈이다.

관군과 전쟁을 하면서도 몇 가지 원칙을 준수하였다.

도망가는 자는 쫓지 않고 가급적이면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며 머물 때도 마을에 피해를 주지 않으며 효녀와 효자마을에는 돌아서 행군하는 등이 그 사례들이다.

중국 모택동의 대장정과정에서 보여주었던 민폐의 차단보다도 더 이른 실천을 동학교도들이 하였다.

대중과 함께하고자 하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대중경제론보다도 한참 앞섰다. 어쩌면 후세의 정치, 경제학자들이 동학의 대등, 대동세상을 자신들의 이론정립에 적극 활용하였다는 생각을 해 본다. 동학은 교육에도 적극적이었다. 고려대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도 동학의 정신을 이어받은 천도교에서 실제적으로 운영하여 오늘날 사학으로서 학교법인의 역할을 한 셈이다. 작금의 부패한 사학이 아닌 원칙을 갖고 정도로서 운영하는 양심적인 사학인 셈이다. 그나마 사학 중에서 모범적인 운영주체인 성공회대학교의 성공회재단, 한신대학교의 기장재단 등을 연상 시킬 수 있다.

나중 민족종교로 새로이 출범한 원불교에서 의료, 교육, 경제사업 등에 치중하여 교세를 크게 확장하였던 것도 동학의 근저를 떠 받치고 있는 가난하고 차별받은 사람들도 한울님으로 섬기는 사람존중 사상을 당시 시대상에 맞추어 재편, 활용하였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동학의 경제사상은 한 살림의 창립선언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무위당 장익순 선생님의 사상정립에도 동학의 대동사상이 큰 역할을 하였다.

갑질로 인한 약자인 을들의 입지가 계속 좁아지고 있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동학이 꿈꾸었던 대동세상은 나눔과 상생경제라는 현대적 표현으로 대치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