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상황을 지켜보면서.

 

김영오씨가 40여일이 넘는 단식을 하면서 기소권, 수사권이 보장된 특별법을 요구하고 있다. 요구에 대한 적정성 판단을 뒤로 하고서라도 얼마나 간절하게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는가가 마음에 전해진다. 나 또한 이 땅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요구가 관철되면 좋겠다는 마음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현실을 지켜보면 마음처럼 쉽지는 않아 보인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취하는 태도에 비춰볼 때 압박이야 받겠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 같으며, 새정치연합의 역량으로서는 맞서 따내기는 더 어려워 보인다. 정의당, 진보당, 노동당, 녹색당 같은 진보정치를 이야기하는 단체들은 지리멸렬해졌으며 또한 국민 여론으로, 그 힘으로 밀어부치기에도 동력이 크지 않아 보인다.

 

저마다 세월호 사건 이전과 이후라고 한다. 나도 동감한다. 그렇지만 세월호 이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세월호를 잊지 않고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 될 것인가? 분노만으로는 오래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금새 피로감을 표출하고 제 삶의 영역으로 돌아설 것이다. 또한 반대 여론을 가진 쪽에서 반격이 돌아오거나 정국전환이 준비되고 있을 것이다.

 

대중은 흐름 같은 것이다.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흘러 다니는 물과 같다. 금새 폭발할 듯 몰아칠 거 같지만 어느새 급격히 식어 굳어버리기도 한다. 또한 겉으로는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만 굳이 투표소까지는 가기 힘들며 가더라도 누구를 찍어야할 지도 잘 모른다. 무엇보다 한국의 인민들은 전체적으로 보수화 되었다. 물질적으로 살 만큼 사는 사회가 되었으며 민주화도 형식적이라도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고 본다. 산업화 시대, 군사정권하에서야 민주화가 진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었다지만 지금은 딱히 진보가 무엇이다 말하기 어렵지 않나 본다. 노동자들이 인간해방이라는 보편적 이념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거대 조직들은 귀족화, 보수화 되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대학이 기업화되었다는 건 갈데까지 갔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뭐가 진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지는 고려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진보, 진보 하는데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물며 진보 쪽의 이야기라 생각되었던 경제민주화나 복지의 문제를 들고 나왔던 박근혜후보가 당선되었던 것 아닌가.

 

현실의 문제에서 정치권력의 재편은 대단히 큰 가치배분의 문제가 된다. 어떤 가치를 띤 세력이 정치권력을 획득하느냐에 따라 재화분배의 구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치권력에 대해 관심이 떠날래야 떠날수가 없는 거 아닌가. 궁극적으로는 시민 개개인이 자유롭고, 경제적 불안이 없는, 사이좋은 사회를 위해 기층에서부터, 지역에서부터 삶의 운동이 펼쳐져야 하겠지만 지금과 같은 맹렬한 자본주의적 욕망이 들끓는 분위기에서는 싹도 나기 전에 꺽이기 십상이다. 이 싹들이 그나마 제 힘으로 서 갈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울타리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게 정치권력을 고려해야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2017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재집권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 쪽은 묻지마 지지층, 고정층이 상존하고 당도 잡음들이 있긴 하지만 꽤 조직적이고 자체 경쟁도 이루어지고 무엇보다 사람에 따라 분열하지 않는 구심점이 있다. 이익이라고 할까? 현실적 이익을 놓고 몰려드는 힘이 있다.  반면에 진보라고 하는 쪽에서는 민주화 이후 그런 구심이 사라져버렸다. 이념적으로도 그렇지만 사람적으로도 김대중이나 김영삼, 노무현이 그런 구심 역할을 해 왔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이념도 보이지 않고 사람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진보세력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자, 한번 보자. 분노를 걷어놓고 한번 살펴보자. 마음이 중요하지만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게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것일까.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것일까. 자기의 몸은 기존의 경쟁체계속에 들여놓고 있으면서, 마음은 그래도 애플보다는 삼성이 더 잘했으면 하고, 집 값이 좀 올라 득좀 보면 좋겠고, 부동산이 올라 내가 산 땅이 대박나기를 바라고, 경제가 활성화되어 좀 더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면 좋겠다는 마음이 밑에 깔려 있으면서, 욕망은 영화관으로 더 맛있는 맛집으로 더 멋있는 술집으로 더 재밌는 놀이터로 향해 있는 게 현실인데 말이다.

 

비난이나 자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분노를 걷고 한번 있는 그대로 보자는 말이다. 정말로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뀌기를 바라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말이다. 내 몸이며 마음, 욕망은 그대로인 채 몇 가지 이슈에 대해 불같이 분노하고 적대시하는 것은 현실을 개선하기는 커녕 문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마치 나는 옳은데 세상이 불의로 가득 차 있다거나, 이런 세상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식으로 점점 정치나 사회에 냉소적이게 되어가는 것 말이다.

 

나를 부정하자는 말도 아니다. 사람들은 제각각 모두가 제자리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자기가 할 일이 있으면 제 일을 하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남을 비난하는 일은 할 필요가 없다. 박근혜가 들어주지 않는다고 분노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러면 내가 더 지칠 뿐이다. 어째거나 국민의 반 이상이 지지를 하고 있다.  그거까지 부정하지는 말자.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열 받을 필요도 없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지금 그렇다. 제 아비 어미도 죽이고 남편도 죽이고 제 자식도 죽이며 묻지마 폭행과 살인으로 점철되는 사회가 멀리 공포영화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주위의 현실이다.

 

비관할 것도 없다. 그저 내 맘이 그건 아니라고 싶다면 뭔가 새로운 삶을, 사회를 살고 싶다면 다만 하면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리본도 달고, 배도 만들어 띄우고, 단식에 동참도 하고 또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창조적 일들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다만 유쾌하게 가볍게 하자는 것이다. 욕할 필요도 없고 서러워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자신의 배를 만들자는 것이다. 여력이 있으면 누군가 태워줄 자리도 하나 더 만들자. 그렇게 스스로 자기를 구하고 그 옆에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 그렇게 우리 함께 세월호에서 나와 망망대해에서 만나자. 그렇게 조금씩 나와야, 조금씩 자유로워져야, 조금씩 뭔가 새로운 게 필요로 해줘야 그에 걸맞는 정치세력도 고려해볼 게 아니겠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