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축제때 학교를 찾은 부산민예총 배인석작가님의 요청으로 최근 개편을 준비하는 예술지 '함께 가는 예술인'에 투고한 글입니다. 지역과 독자들에게 든든히 뿌리내리는 경상도문화예술잡지를 만들어보고자 개편준비호를 발행하면서 여러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부산예술인들께 응원을 보냅니다. 이 글은 개편준비2호(가을호)의 주제 '장수만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오래된 전통과 관습이 새롭게 등장하는 신세대 문화와 어떤 관계속에서 나아가고 있는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은 무엇인지 모색하는 의미의 주제이며, 좀 거창하게 지구 생명의 진화과정과 연관지어봤습니다.

 

지구를 지키는 구세대 생명

46억년이란 장구한 역사를 가진 지구. 탄생한지 채 10억년도 되기 전인 38억년 전에 매우 우주적이며 신비로운 사건이 발생했다. 아직 다른 외계 행성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최초 생명의 탄생’이 바로 그것이다. 최초로 생겨난 생명의 모습은 인간의 눈으로 접하는 현재의 많은 생명들의 모습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너무도 작은 단세포 생물로 현대의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 이후 긴 긴 세월 동안의 드라마틱한 진화를 거쳐 현재 확인된 생물종만 150만종 이상, 그러나 실제로는 1천만종이 넘는 생물이 우리 지구에 터전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최초 생명인 단세포 박테리아로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가지치기를 통해 인간을 비롯한 매우 고등하고 정교한 동식물이 지구촌을 아름답게 수놓은 과정을 실로 아름답고 신비롭기만 하다. 그중에서도 우리 인간은 기나긴 진화의 산물이요, 고등 생물로서 마지막 단계라 할 수 있으며, 그 어느 동물도 갖지 못했던 지능과 사고 능력을 갖춘 존재로 이제 모든 생명의 터전인 지구의 운명마저도 쥐락펴락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는 생명의 탄생 그 자체 만큼이나 놀랍고도 극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진화를 통해 새롭게 등장한 신세대들만 지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초 생명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세대의 가지치기가 진행되어 오는 동안 그 본류를 유지하며 모습과 기능이 거의 변하지 않은 미생물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초기부터 있어온 박테리아들은 현재 박테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생명들의 무게를 합한 것만큼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들은 진화의 흐름 속에 끊임없이 변화해 온 생물이 아니라 생명 탄생 초기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존재들이다. 화려한 꽃나무들을 비롯한 푸른 식물들, 땅과 바다를 누비는 많은 동물들은, 식물과 동물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지구를 지켜온 이 미생물들이 없이는 생명활동을 지속할 수 없다.

 

이 땅의 모든 진화된 생물들의 원동력, 그것들이 바로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들이다. 당장 100조개나 되는 세포로 이루어진 우리 몸에도 그 열 배가 넘는 수의 박테리아가 들끓고 있으며, 이들이 우리 몸을 빠져나간다면 구멍이 숭숭 뚫리게 될 것이며 곧바로 우리의 생명력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원시생명체들. 현존하는 미생물들은 그들을 가장 닮은 존재들로서 그때나 지금이나 이 아름다운 지구에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이후에 생긴 모든 종들은 이 하찮은 존재들에 근본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그 덕택으로 다양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인간은 지구의 막내로 가장 신세대라 할 수 있다. 신세대인 만큼 지구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어디로 튈 지 알기 힘든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이 제아무리 날뛰어도 오랜 동안 이어내려온 미생물들의 안정된 생태계 운영능력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그들은 수십억년간 대대손손 같은 일을 해오면서 새로운 세대들을 통제함과 동시에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구세대의 역할인가? 우리의 DNA 속에는 수십억년전의 정보가 고스란히 살아있으며 따라서 여전히 모든 뭇생명들과는 떨어질 수 없는 ‘온생명’이다. 화려한 지구촌, 생명으로 가득찬 지구를 더욱 푸르고 생기있게 하는 것은 생명의 신구세대가 각자의 역할을 통해 조화를 이룰 때이다. 인간 이전 세대까지는 이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조화롭게 살아왔지만 지능과 사유능력을 지닌 인간은 오히려 우리 생명력의 근원인 미생물들에 항생제니, 각종 화학약품들을 가지고 도전장을 내밀며 인간 스스로의 생존에 위협을 초래하고 있다. 인류가 사라져도 지구는 거뜬히 살아갈 수 있다. 무구한 세월을 지켜온 미생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가장 신세대인 인간이 그들 앞에서 겸손해질 때이다. 그리고 조화를 꾀할 때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 인간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