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읍내 나갔다가 통장을 확인해보니 백여만원이 들어 있었다. 요즘 생활들이 크게 돈 들어갈 때가 없어 문제될 건 없지만 이것 밖에 없나 싶은 생각에 잠시 어, 어떻하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뿐. 금새 까먹는다.

 

요즘, 정말 돈 걱정 없이, 아니 돈 생각 자체가 별로 없다. 농사 모임 분들 덕에 밥 걱정 없이 하루하루 지낸다. 농사샘이 6년이 더 넘은 매실 엑기스를 가져오셨다. 그냥 막 먹기엔 참 고급스러울 정도다. 이백님이 농사지은 포도를 먹어보라고 가져다 준다. 참 귀한 포도인데. 차도 내 차는 아니지만 필요할 때면 언제 든지 타고 다닌다. 가고 싶은 데는 어디든 다닌다.

 

올 여름은 학교 건축일이 있어서 한 열흘 정도 참가했다. 나는 건축일이 참 재밌다. 그렇지만 외부에서 하면 체력도 약하고 시간도 많이 할애해야 하고 신경도 써야 해서 잘 하지 않는데 학교 건축팀과 함께 하면 여러 좋은 점들이 있다. 기초에서 마감까지, 콘크리트작업부터 미장이나 도배일까지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손댈 수 있다. 일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고 몸에 집착해 일을 소홀히 하지도 않는다. 이리저리 살피면서 하는 일이 참 재밌다. 게다가 일정 일당도 챙겨받는다. 일석이조다.

 

연찬문화연구소라는 곳에서 연찬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연찬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한번 정리하겠지만 우리사회가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라고 생각한다. 도구라기 보다는 관점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더 나아가면 깨달음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를 할려는 건 아니고, 여기서도 내가 하고 싶어서 하고 재밌어서 하고 함께 하는 게 좋아서 하는데 여기서도 일정 연구비를 챙겨준다. 참 고마운 일이다.

 

내가 좋아서 농사도 짓고 건축일도 하고 연찬공부도 하는데 부수입들이 참 많다.

 

농사일을 하다보면 몸이 고될 때도 있지만 뭔가 참 마음이 편안해지고 막걸리 한잔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고 수행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고집하는 생각이 내려지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연에 온몸이 내맡겨지는 일. 다른 곳에서는 수행이라는 걸 왜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만하면 수행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싶다.

 

건축일을 하면 머리로 구상하고 디자인하고 직접 몸을 움직여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다. 뭔가 직접 만든다는 행위는 참 훌륭한 일인 거 같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간다면 그건 바로 '건축'을 통해서다. 삶이 '건축' 아닌 게 없다. 무언가 만들어 가는 행위, 꿈꾸고 디자인하고 현실에서 구현해내는 모든 몸짓이다. 기술로서의 건축만 보면 제한된 것이다. 디자인으로서 건축만 보는 것도 공허하다. 디자인과 기술이 함께 고려되는 행위. 건축이라는 분야에서 삶이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연찬이라는 것도 그렇다. 자신에 대해, 사회에 대해, 세상에 대해 살펴가는 재미가 있다. 이것은 오롯이 스스로 '무지'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한다. '아, 내가 안다고 생각했는데, 잘났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잘 모르고 있구나, 남과 다르지 않구나'하는 것에 대한 자각. 깨달음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이것에 대한 깨달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전제가 되어야 비로소 함께 새로운 사회에 대해, 새로운 세상에 대해 탐구하고 협의하고 실천해나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만이 옳다거나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착각으로 각자의 아집과 주장과 논쟁이 난무하게 된다. 이제까지 늘 이런 식의 되풀이였지 않은가 살펴볼 일이다.

 

세월호 사건은 정말로 어처구니 없이 무고한 생명들이 소멸되어 간 사건이며 그리고 너무나 의혹으로 가득찬 사건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그래도 우리사회가 괜찮은 사회 아닌가. 뭔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발전해나가고 있다. 조금 더 노력하면 된다는 식의 믿음에 일대 혼돈을 일으킨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총체적인 문제가 잠겨있을 거 같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세월호 안에서 구출되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이나, 배 밖에서 뉴스를 지켜보며 어여 구출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정말로 우리가 배반당한 것은 구출해주리라 기대했던 그 믿음이나 가치가 부질없는 것으로 되어버렸다는  것이 아닐까싶다. 그것만큼 충격적인 게 있을까.

 

그렇지만 또한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가치와 방법으로 새로운 배가 띄워지고 있다는 것도 사실일게다. 이것은 뭔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상상해보라. 내가 탄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방송에서는 '그대로 있으라'라는 말만 되풀이되고 뭔가 이상한데 밖에 나가보기는 너무 무섭고. 안쪽이 더 안전하면 어떻하나? 밖에 아무도 없으면 어떻하나? 그런데 누군가가 밖에 우리를 구해주러 온 배가 도착해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을 때, 혹은 밖으로 나가면 누군가가 우리를 구해줄 배가 와 있으리라는 기대와 믿음이 생길 때.

 

여전히 인간에 대한 기대와 믿음은 사람을 밖으로 나서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약하다고 해도 이런 믿음과 가치가 존재하는 것과 소멸된 것은 한 개인의 삶을 위해서도, 한 사회가 지탱해나가기 위해서도 너무나 큰 차이일 것만 같다.

 

이런 것들을 온배움터에서 함께 고민하고 나누고 공부해보고싶다.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과 공부가 세월호를 잊지 않고 이후를 살아가는 내 나름의 기도이며 실천이다. 이 배가 가라앉지 않고 망망대해에 잘 띄워져서 부디 몇 사람이라도 더 올라탈 수 있다면, 또한 다른 배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존재의 이유는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