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배움터 지침서

1. 지침서의 필요성

 온 배움터는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명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공간이다. 그러면 온 배움터에서는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우선 우리가 생명을 ‘온’으로 공부한다는 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깨달은 내용을 온 몸과 맘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다시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온 배움터의 목적을 명확히 설정하고 목표에 따른 교육과정을 드러내야 한다. 아울러 물과 샘, 여울들의 학문에 대한 태도, 책임과 자율이 조화된 제도,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 등에 있어 구체적 실천 지침이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 주변에서 주로 생태와 생명을 가치와 기능, 효율의 관점으로 사회운동을 하거나 학교 및 공동체 운동들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접근방식이라 한다면 우리는 생명과 생태를 유기적, 통합적으로 접근하여 ‘온 배움’을 시도하고 있다. 온 배움터는 삶의 공간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강의나 체험의 공간과는 다르다. 오랜 시간동안 생명과 생태가 어우러진 공간에서 머물며, 공부, 수련, 연구, 실험, 분석, 체험을 훈련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날 우리는 대학이라는 틀에서 ‘문명 치료사’라는 목표와 교육과정을 드러내고자 했지만 여러 가지 혼란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목표가 흔들리고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는 제도권 대학의 틀과 공동체적 유연성 사이의 혼란, 학문과 삶의 통합에 대한 어려움, 각 과정들 간의 학문적 소통의 부재 등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인식과 의지, 이념과 철학을 중심으로 대안을 모색했기 때문에 내부의 안정이나 통합에만 매달렸으며, 온 배움에 대한 실천적 텍스트나 현장을 설정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지식을 생태적 공간으로 사유하지 못함으로써 학교와 지역사회가 이완되었다.

이에 우리는 이런 필요성으로 온 배움터의 구성원이면 누구나 읽고, 새기고, 강령으로 삼을 수 있는 지침서를 만들어 우리의 주체를 세워야 할 것이다.


2. 온 배움터의 목적


오늘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가 소수의 향유와 지배질서로 고착되어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향유 욕망과 지배 욕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어, 자연의 생태계와 생명질서를 무너뜨리고 인간의 숭고한 가치를 짓밟으며 이제는 스스로 자신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 또한 무분별한 성장과 발전, 끝없는 행복과 복지를 추구하는 세계화와 과정에서 인간은 스스로 소외되고 내부 분열을 일으키고, 지식을 서로가 도구로 삼으려는 계략으로 이용함으로써 지구와 자연은 그 생명성이 소진되며 매우 위험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역사의 과정을 정확히 성찰하고 현대 사회를 진단함으로써 그 본연의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해 온 배움 과정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정한다.

 

“온 배움터의 궁극적 목적은 물, 샘, 여울, 녹지사가 주체가 되어 본래부터 우주와 지구 질서를 관장했던 생명의 원리를 깨달아 알고, 그 원리에 응답하고 실천함으로써 생명질서를 복원하는 창조적 전사를 육성하는 것이다.”


3. 목적의 해설

(1) 왜 전사인가?

우리는 개인의 안일과 행복만을 추구할 수 없다. 또 홀로 주체성에 빠질 수 없다. 나아가 우리는 근본 생태주의에 안주할 수 없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며 역사적 존재이다. 즉 사회적, 역사적 요청에 응답한 존재이다. 나아가 우주와 지구의 신음에 응답하려는 존재이다. 우리가 창조적 전사라는 의식을 하는 것은 지구의 생태적 위기가 그 정점에 있으며 이 위기를 극복하고 해소하여 인간의 지속가능한 공생, 공존을 무엇보다 시급히 도모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창조적 전사란 ‘온 배움’으로 응집되어야 함을 일컫는 것이며, 영성과 인문학, 그리고 과학의 조화를 일컫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지역사회를 봉사하고 섬기면서 지역 주민과 함께 생태문화공간을 재생, 복원, 창조하는 전사를 말하는 것이다.

창조적 전사의 의식을 갖는 요소는 세 가지이다. 첫째, 전위(avangard)의 다른 표현이다. 치열한 공부와 자기 수련 과정이 필요하며 그것을 통해 실천가가 되는 것이다. 둘째, 온 배움은 모든 학문의 중심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으며, 점점 기피하는 상황 속에서 특별한 의식과 지성을 훈련하는 곳이다. 셋째, 무한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성 위기와 자연 질서의 붕괴 위기에 직면한 사회적 현실에서 이를 극복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2) 온 배움이란?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산업의 도구로 전락하면서 인격체로 존재할 수 없는 사회적 압력을 받고 있으며, 혼이 빠지고 정신세계가 소멸되며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인간의 감성과 도덕성, 그리고 정의롭고 선한 의지 위에 기술과 기능을 쌓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 동물로 전락하고 있고, 그로 인한 자연 환경과 생태계 파괴가 인간의 생존을 불가능하게 하는 위기를 앞당기고 있다. 이런 결과는 온 인격의 파멸로 가고 있다. 배움의 궁극적 목표가 인간의 온 인격에 도달하는 것이라 한다면, 온 배움은 온 인격을 닦는 과정이다.

한국의 교육제도와 철학이 근현대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각 교육기관에서 온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자신을 의탁할 수 없는 사람들이 각종 대안교육과 온 배움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고등 교육의 내용을 온 배움이란 이름으로 함양에서 펼치려는 것이다.

온 배움이란 인문학과 사회, 자연과학을 조화롭고 균형 있게 공부한다는 뜻이고 상호 보완적으로 공부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현대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영성을 토대로 공부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공부가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지 않도록 할 것이며, 오히려 공생하고 공존할 수 있는 생명질서를 구축하는 과정과 방법을 배우는 것이 온 배움이다.


(3) 주체의 문제

온 배움터의 구성원 (물, 샘, 여울, 녹지사)들이 온통 하나가 되어 제각기 역할과 기능을 서로 보완하여 온 생명을 일구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를 ‘더불어 주체성’이라 한다. 따라서 자연 환경이 인간과 동등한 주체로서 ‘더불어 주체’를 이루어야 한다. 온 생명을 배우고 실천하는 온 배움의 터전이 바로 ‘함양 울타리’이다. 이 울타리를 중심으로 전국으로 그 울타리를 넓힐 수 있다. 그리하여 온 생명의 기운이 큰 울타리(한 울)를 이루도록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주체’를 확립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은 무엇인가? 우리 스스로 만족하고 개인적인 목표와 가치가 분명해야 하지만 모든 구성원의 만족과 목표 및 가치가 공감을 이루고 행동하고 실천하는 방향이 일치해야 한다. 이런 조건은 어떻게 조성될 것인가? 개인의 존엄과 자율을 생활 가치의 근본으로 삼고, 보다 편리하고 쉽고 많이 가져야 하는 ‘행복주의’의 회오리에 빨려드는 현대 사회의 흐름에서 ‘더불어 주체’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세속화된 행복주의’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참 가치에 기초한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이다. 또한 불안정하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회와 지구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는 일이다. 인간을 병들게 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현대문명에 대해 경계하고 인간을 소외시키고 좌절케 하고 체념에 빠지도록 하는 사회구조를 거부하는 의식과 마음이 모아질 때 ‘더불어 주체’가 형성된다.


(4) 응답이란?

우주의 기운과 생명의 원리에 대한 존경과 경외, 숭고하게 여기는 마음과 최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응답이다.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첫째 ‘따라함’이다. 우리가 생명의 원리를 올바로 따라하고 있는가를 항상 묻고 성찰해야 한다. 둘째는 감사함이다. 우주의 기운과 생명의 원리가 일방적으로 다가와 우리의 삶을 일으키는 것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는 나눔이다. 우주의 기운과 생명의 원리를 받고 체험한 분량을 ‘너’와 ‘나’ 사이에 넘치도록 나누어야 한다. 여기에서 ‘너’란 우리가 만나는 사람과 공동체 혹은 단체들이다.


(5) ‘터’의 문제

우리의 터는 사람들이 생각과 뜻을 모아 조성된 것이지만 그 사람들은 자기의 개인적 의지와 의욕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요구와 우주의 기운에 응답하여 모인 것이다. 새로운 세계와 질서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응답한 것이다. 그러므로 온 배움터 역시 응답자로서 책임과 사명을 다해야 한다. 특히 온 배움터는 녹지사의 뜻으로 조성된 터이다. 그러면 응답자로서 책임과 사명을 다하기 위한 온 배움터는 어떤 실체로 드러나야 하는가?

녹지사의 뜻으로 조성된 터라는 의미는 그분들의 돈과 마음으로 조성되었다는 것과 함께 그분들이 살고 있는 공간 및 터와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4. 온 배움터 가족들의 자세


따라서 온 배움터 구성원들은 생태문화 공간에서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를 약속해야 한다. 각각의 기능과 역할, 계층과 계급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전사의식을 갖고, 더불어 주체성으로 무장되어야 하고, 각 삶의 터에서 유기적 관계를 강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1) 우주적 공간에 대한 응답

우주 공간은 우리가 소유하거나 임의로 변형시킬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주 공간을 배우고 그 질서를 따르고 우주의 마음에 도달해야 한다.

(2) 지역사회에 대한 응답

배움터 울타리를 감싸고 있는 지역 사회에 응답해야 한다. 우리 지역인 함양과 백전면은 산업기술사회의 회오리에서도 생명의 본질을 지켰고 우주에 응답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우주에 응답하는 마음으로 지역 사회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다. 지역 사회란 지역의 자연 환경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 사는 주민이 지역 사회이며, 그들의 삶과 생각과 마음을 포괄하고 있다. 우리의 응답이란 포괄적 지역사회에 대한 것이다.

(3) 온 배움터에 대한 응답

물, 샘, 여울, 녹지사는 개체와 인격, 이름과 성품을 지니고 있다. 우리 각각은 온 배움터를 갈망했고 이 배움터에서 대안을 찾으려 하고, 지속가능한 미래의 희망을 일구려하기 때문에 이 배움터에 응답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치열한 배움으로, 겸손한 섬김으로, 아낌없는 나눔으로 응답해야 한다.


5. 교육 과정의 원칙

(1) 샘 중심의 교실 수업과 현장의 관찰 분석을 통한 읽기로, 교실과 현장의 상호 반사가 일어나도록 한다.

(2) 노동과 생활도 수업으로 바라보고 그 실상과 과정을 기록하여, 노동과 생활을 객관적 시각으로 보게 하며 성찰하도록 돕는다.

(3) 지금, 여기, 우리의 생태 공간(삶의 자리)에 초점을 맞추어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도록 도우며, 타 공간에서 모색된 경험과 사례에서 인식되고 정리된 사상과 이론, 방법론, 구조론, 해석학을 배운다.

(4) 녹대 혹은 개인의 노동과 삶이 이론 및 학문과 적합성을 띄도록 객관화하고 분석하여 학문적으로 성찰하도록 돕는다.

(5) 필독서를 통해 학문과 실천을 보완하도록 도우며, 풀리지 않는 문제 혹은 쟁점을 주제로 하여 토론모임을 상설한다.

(6) 생태적 이성과 합리성, 생태적 인식과 의식을 완성하는 영성을 수련하고 수행하는 교과목을 필수로 정한다.

 

(위 지침서는 허병섭 샘께서 쓰러지시기전까지 온배움터의 여러 샘님,물님들과 생각을 나누시면서 정리하신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