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은 발전할수록 두 가지 형태의 경향을 보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 하나는 방대한 양의 지적 축적으로 인해 한 사람이 그 분야의 모든 지적 성과들을 섭렵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분야에서 새로운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은 점이다. 그래서 모든 학문 분야는 많은 수의 세부 분야들로 나눠지면서 같은 연구실에서 일하는 멤버들 사이에서 서로가 연구하는 주제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극도의 지적 편협성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삶의 터전인 지구와 인류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게 된 원인도 이와 같은 지적 편협성으로 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첨단 나노 과학에 종사하면서 물질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만 집중함으로써 신소재 개발 등에 전념할 뿐 지구 환경의 현재와 미래를 점검하면서 과학자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른 하나는 학문의 양적 성과와 함께 질적으로 더욱 심원한 세계를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면서 과거에는 큰 관련성이 없어 보였던 분야들이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으로 드러날 뿐 아니라, 새로운 관계성을 창출해 가면서 통합을 모색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위에서 말한 극단적 편협성과는 반대적 경향성을 보이는 것이다. 물리학의 경우 물질세계의 기본이 되는 학문이라 할 수 있지만 보통은 살아있지 않은 물질계에만 국한될 것으로 생각하지 생명 현상이나 주가 등 경제 지표의 변동 예측과 같은 경제학 분야, 나아가 심리학 분야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세기 과학 혁명을 통해 미시세계와 초 거시세계에 대한 시각을 통해 정신적 영역 마져도 물질과학을 통한 접근 가능성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문제를 연구 대상으로 삼기에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사회생물학의 경우도 생물학과 사회학의 통합 가능성을 제기해 준다.

 

두 경향성이 모두 과학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므로 어느 것이 강조되고 나머지 하나는 사라지거나 해서는 안되며, 조화를 통해 인류가 지속가능한 문명을 영위하면서 자연에 관한 지혜를 쌓아 나아가야 한다. 특히 후자의 경우 통합 학문의 모색을 통해 각자 다른 길을 걸어온 자연 과학과 동양에 뿌리를 둔 사상적 체계를 묶음으로써 인류 평화를 위한 객관적 지식 체계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미 서양의 과학과 기술이 조선에 들어오던 19세기에 이러한 패러다임을 가지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학문적 통합의 안목을 가졌던 이가 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서양에서 건너온 자연과학적 지식을 빨리 흡수할 수 있었고, 동서양의 전통적 체계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기학(氣學)이라는 학문을 수립하였다. 단순한 서양의 과학을 수용하는 것도 아니요, 전통적 성리학을 무조건 배격하자는 것도 아닌, 전통 학문이 갖는 문제점과 모순을 극복하면서 자연과학과의 접목을 통해 완전한 우리의 과학(Science)을 추구했던 지식인이요 과학자였다. 그의 호는 혜강(惠岡)이요 이름은 최한기(崔漢綺, 1803-1877)이다. 그는 벼슬에 오르지 않은 중인의 신분으로 독학으로 공부하였기에 누구의 학문도 정통으로 잇지 않았던 주류에서 벗어난 학자였지만, 그가 이룩한 사고의 틀은 시대를 앞질렀기에 최근까지도 크게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가, 도올 김용옥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그는 약 1000권의 저술을 남겼는데, 이는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기록이다. 특히 55세에 그의 학문을 집대성한 <氣學>을 통해 모든 현상은 무형의 리(無形之理)나 무형의 신(無形之神)이 아닌, 유형의 리(有形之理)를 가지고 유형의 리를 전습하고, 유형의 신(有形之神)을 밝혀내어 유형의 신을 섬긴다면 천하, 국가에는 단계적으로 밟아나갈 실천의 차례가 있게 되고 수, 제, 치, 평에는 미루어나갈 본보기가 있게 될 것이라 하였다. (擧有形之理而傳拾有形之理, 闡有形之神而承事有形之神, 家國天下有實踐之階級, 修齊治平有推移之柯則.) <기학>의 서(序)에 씌여있는 이 말을 통해 그의 격물치지론(格物致知論)의 핵심적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즉 증험할 수 있는 유형의 리와 신을 쫓아 격물치지하고 그 리를 밝힘으로써 천인의 변화를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철저한 과학자였다. 그의 학문세계는 열려있었으며, 앞으로 기회가 되는 대로 최한기의 기학을 공부하면서 생각을 서술하겠지만 일단 먼저 그가 남긴 다음의 글로 이 칼럼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若有人特擧別般事物之誠實, 加於氣學,

證驗多於氣學, 事事勝於氣學者, 明之于天下,

氣學乃可廢也.

 

만약 어떤 사람이 특별히 어떤 사물의 성실한 면을 들어서 기학에 부가했을 때,

증험되는 것이 기학보다 많고 일마다 기학보다 나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천하에 밝힌다면,

기학은 이에 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얼마나 열린 학문적 자세인가? 자신의 학문이 최고라 여기고 다른 어느 비판도 수용하지 않으려하고 모든 일을 거기에 꿰어 맞추려는 아집과 편견이 아니라, 더 증험되는 것이 많고 훌륭한 학문이 나오면 언제든지 폐할 수 있다는 열린 사고를 지향한 최한기야 말로 시대를 앞섰던 과학자이다. 21세기를 사는 과학자들은 서양의 문물 수입과 기울어가는 조선왕조말의 혼란기에 인문, 사회,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통합적 학문을 이론적으로 제시한 사상가이다. 그의 기학을 다시 들여다보며 앞으로 나가야할 통합 학문의 기초와 방향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책장을 넘긴다.

 

참고문헌: 氣學, 惠岡 崔漢綺 著, 손병욱 譯註, 통나무 출판사 (2004)

주 1) 氣學 序 (28쪽)

2) 氣學 2-19 (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