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기원전 561년 지금의 산동성 곡부 부근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는 없지만 그 자신의 말에 의하더라도 그다지 유복한 편은 아니었다.

커서는 혼자서만의 노력으로 높은 학덕을 쌓았지만 요즘말로 세상의 정치인들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자신보다 더 출중한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은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그 행태는 비슷한 것 같다.

공자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13년의 세월을 떠돌아 다니지만 심한 좌절감만을 그는 겪었다. 인생의 후반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학문을 함께 하고 찾아 오는 벗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고작이었음을  공자도 늦게 터득하였다.

논어의 핵심인물인 공자는 서양의 다른 종교처럼 절대자로 군림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예수처럼 신의 아들이라고 자처하지 않았고 석가모니처럼 자신이 인간의 불완전성을 초월하였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는 평범하게 세상을 살려고 노력하다가 그냥 세상을 떠났다.
공동체 정신을 특히 역설한 그의 인(仁)사상은 예수의 사랑, 석가모니의 자비, 좁게는 동학에서 제시한 공초(供草)와 함께 어둠속의 인간들에게 한 줄기의 빛을 제공 해 준 셈이다.

이슬람권에서 이의를 제기할 지 모르겠지만 공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예수를 인류의 4대 성인이라고 추앙을 한다. 그 분들의 말씀을 공자는 논어, 석가모니는 불경,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대화, 그리고 예수는 신약을 통하여 우리는 접하고 있다.

이들 책속에 녹아 있는 그 분들의 생동감 있는 삶에 대한 지혜들은 앞으로 우리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다.

논어의 경우도 중국, 한국, 일본을 통털어 세상에 선보이는 책자들이 수십 아니 수백종을 훨씬 넘는다. 지금 이 시간에도 논어에 대한 해설서는 일반 독자들을 향해 수없이 출간되고 있다. 논어앞에 각종 수식어를 붙인 채 상업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경우까지도 등장하였다. 그런 연유로 책장에 꼽혀 있는 여러 종류의 주해서에 미련을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다시 내가 논어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인천을 떠나지 않고 활동하고 계신 '이우재'라는 선배께서 성당의 신부님들을 상대로 논어강해를 하면서 책으로 엮었다고 책을 저에게 보내주면서 단숨에 흩어 내려간 것이 재차 관심을 이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어느 논어주해서보다도 나에게는 현실감있게 느낌이 와 닿는 게 있어 몇 번이나 관심있는 구절들을 음미하면서 현 시대상황과도 결부하여 생각을 정리해 보기도 하였다. 그는 논어의 해설에 역사적, 사회과학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논어를 보다 자세히 접근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춘추, 전국시대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연대기가 아닌 사회경제사로서의 시각을 갖고 보는 것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쉽게 사회읽기로서 춘추, 전국시대의 역사를 자신의 중심에서 이해할 때만이 당시 사람들의 고민이 무엇이었으며 또 공자의 고민이 무엇이었는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그럴 때만이 공자를 역사속 살아 있는 구체적 인간으로서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구절은 학이(學而)에 나오는 아래 내용이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구태어 우리말로 풀어쓰자면
"배우고 때론 익히면 또한 즐거움이 아니랴, 멀리서 친구가 찾아와 주니 또한 즐겁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이를 서운하게 여기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로 부를 수 있지 아니하겠느냐?"

녹대식구들도 이젠 정확히 절반이 남은 금년에 논어, 장자, 금강경, 플라톤의 대화, 동경대전의 고전에 흠뻣 빠질 수 있는 여유들을 가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