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는 까라마조프가네 형제들에서 러시아의 부정적 현실, 그것이 사회적 현실이든 인간의 황폐해진 영혼이든 간에, 그에 대한 나름의 진단과 이를 구원할 사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러시아의 지식인층과 상류층이 서구적 생활과 사상, 신앙으로 물들어 가는 것에 대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다. 반면 조시마 장로와 알료사로 상징되는 신앙과 삶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면서 러시아의 희망을 역설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의 타락한 사회와 부패한 인간 군상들을 보면서 이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러시아정교회와 러시아 민중들이 공유하는 종교적 신앙을 소박한 삶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가 서구 사상과 자본주의에 물들어가는 러시아 상류층과 지식인들을 비판하면서 옹호하는 것은 결국 대지처럼 광활한 영혼의 자유와 기독교적 인간애에 기초한 삶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부정적 현실이 서구적 생활과 사상과 사회개혁에 의해 다 구원될 수 없었다.
당시 러시아에 밀려온 서구 자본주의, 로마가톨릭, 유태인, 자유주의 사상 등과 이에 비판적 이었던 사회주의 사상과 그 세력들이 러시아의 부정적 현실에 대한 희망일 수 없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옹호하였던 러시아 정교회, 로마노프왕조 그리고 러시아 민중들의 의식과 삶만이 러시아의 희망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에서 서구 사상인 공리주의 신념에 따라 사회적 악을 제거하고자 살인을 저지른 한 지식인의 행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사회적 약속인 법적 기준을 무시하고 살인죄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다. 그리고 이를 스스로 정당화하였다. 이는 오늘날 까지 그리고 인류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고민스러운 문제다. 자신의 이성과 논리에 따른 신념을 절대적 가치 기준으로 삼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대하면 자신의 양심과 종교적 믿음을 절대적 가치 기준으로 삼는 것도 문제 삼을 수 있다. 맹목과 절대화는 그것이 영혼이든 감정이든 이성이든 사회적 윤리와 관습이든 위험하긴 다 마찬가지다. 그 자체로 항상 성스러운 것은 없다. 추상적 말의 수준에서 진리는 없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작가 자신의 종교, 정치 그리고 사회문제에 대한 신념과 사상을 설파하는 전형적인 이데올로기적 소설이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분열적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의식적이고 이념지향적인 인물들이다. 소설 속의 인물들의 행동 동기는 자신의 신념과 사상에 따라 움직인다. 인간의 내면과 심리를 사건에 대한 치밀한 논리적 구조와 사실적인 묘사 등과 함께 뛰어나게 그려내면서 작가가 말하려는 문제의식에 깊이 파고들고 있다.
이성은 영혼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이성은 물질과 육체도 다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영혼과 인간의 내면, 마음, 욕망, 의식, 정념 등 그 어느 것도 그 하나만으로 인간의 행위와 사회적 현상을 다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성은 우리의 행위와 내면, 목적과 수단을 성찰할 수 있게 한다. 이성에게는 신앙처럼 맹목적인 믿음이 없다. 이성 앞에서는 신앙과 영혼도 성찰의 대상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과 그 주인공들도 성찰의 대상이다. 그리고 이성 그자체도 성찰의 대상이다. 조시마 장로나 알료사와 소냐를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그냥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감성이 존중해야 할 때를 이성은 판단한다. 물론 이성의 판단중지가 우리의 행위에는 매우 많이 일어난다. 비이성적 행위는 이성적 행위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행위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인간과 사회적 문제의 궁극적 근본적 해결이란 그 자체가 신앙이며 환상이다. 고뇌하는 영혼에 대해 신앙이 해결책일 수 있겠지만 다양한 측면의 인간 삶이 부닥친 문제는 다양한 해결책을 요구한다. 하지만 어느 한 측면의 새로운 해결책은 새로운 문제를 낳기 마련이다. 인간의 삶은 새로운 문제의 연속이다.  
인간은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몸은 존재 그 자체가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활동하고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인간의 마음 역시 많은 마음들과 관계하고 소통하면서 열려 있어야 살아 있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될 수 있다.

마음은 온 세상을 담을 수 있을 만큼 크고 찔러도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을 정도로 작기도 하다. 이 내면의 무궁한 세계를 탐구하고 그 신비를 사랑하고 자신의 마음 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마음 가운데는 수 많은 성현들과 인류의 영혼의 스승들이 각자 나름의 인연으로 인해 자리 잡고 있다. 각자 나름의 다양한 방법과 길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와 자연이 건강하게 되는 길도 그 자연과 그 사회 나름의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자연 등 상호간 건강함이 서로 연관되어 있더라도 단선적이고 기계적이지 않다. 결국 몸을 가꾸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 역시 사람마다 다양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이라는 소설의 형태를 빌려서 이를 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