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배움터를 통해서 온전하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는 여러분들이 함께 할 수 있고, 

소박하고 조촐하지만 따뜻한 빛이 비출 때  밝음으로 깨어 날 수 있는 배움의 알이 되길 바랍니다.

자신의 배움으로서 일으킨 작은 날개 짓이 당장은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더불어 갈 수 있는 그 바람을 아래와 같이 내어봅니다.

  

1일

- 인사나눔과 저녁 식사 (함양 온배움터로)

- 자신의 상태와 관심, 장기, 배움에 대한 나눔

- 영화로 다시보기 (아름다운 의념) 

- 향연 ( 술술술 나오는 사랑과 사람 삶에 대한 대화)

- 자유로운 밤 들기

2일

- 자신을 깨우기 위한 두드림(수벽 두드림, 무예활법과 의념의 몸짓과 소리)

-  자신의 배움과 온전함에 대한 나눔(논어 학이편을 통한 온전한 배움에 대한 나눔)

- 먹을 거리를 나누며 몸에 대한 감사와 생활습관 돌아보기

- 모임을 통한 배움나눔 더불기 (신화, 동화, 시, 노래, 춤, 예법 등의 풍류로 함께 밝히기)

- 명상, 온전함을 위한 온배울 씨알 맺음과 마침  (자신의 수행과 온배움으로)

 

앎으로 부끄러워진 삶을 공동의 배움으로 씻어내고자 한 사람이 두 손을 모아, 성실한 삶으로 앎이 필요한 분들을 모십니다.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人不知 不溫, 不亦君子乎

자왈:학이시습지,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인부지 불온, 불역군자호

 

 온배움을 위한 전통생활문화를 알아니 옛 서당에서는 겨울을 어려운 공부를 하기 좋을 계절로 삼았답니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의 기운도 차가워진 하늘 아래 하얗게 덮이어 그 보이지 않음 속에서 힘찬 돋움을 준비하하고 있습니다.

외공을 드러내기 위한 내공을 쌓는 시기인 것이죠. 가장 어렵게 보이지만 꼭 필요한 '온전함'에 대한 공부를 하려니,

함양의 쌀쌀한 겨울과 온배움터가 떠오릅니다. 온전한 배움터라고 부를 만한 외공은 부족하지만 우두커니 머무르고 있습니다.

온전한 배움에 대한 씨알은 무수한 밟힘과 꺽임, 차디찬 바람에도 아직도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 이루어 낼지 모르지만, 아마도 온배움으로 꽃피워 열매맺은 온배울 알을 

온누리로 퍼뜨릴 날을 무수히 맞이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을까요?  

 

 그 동안 겨울 마다 생명문화연구소 분들과 서당이라는 이름으로 배움의 씨알을 틔우고자 모임을 구상하고 몇 번 실행해보았습니다.

그 때는 "온배움이란 무엇일까?" 에 대해서 감을 잡기 위한 공부를 닥치는 대로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모일 수 있는 사람들끼리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거리를 공부하거나, 온배움터 밖에서 그러한 장을 찾으며 공부를 하였습니다.  

 

 2013년에는 온배움터 생명문화연구생으로 졸업 했고,  미흡한 공부를 위해 그 것을 찾아다니다 어느 순간

온배움의 씨알이 이미 안에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알을 밝히기 위해 추운 겨울 다볕을 찾아

함양 온배움터에서 모임을 가지려 합니다. 그 씨알을 밝히며 온전함의 싹이 피어나 온전히 그것으로 되기까지

생명의 농사를 짓듯, 때에 맞추어 중요한 공부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앎으로 삶을 비추어 보니 

주위에는 아직도 다양한 배울 거리가 있지만 온전함 자체에 대한 배움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온전함에 대한 배움이니 온전할 배움이 있어야할 온배움터를 보더라도 생태문화공간창조라는

이념은 있지만 그 것을 자신의 이념으로 삼은 자들은 몇이나 있을까요?

또,  생명적 가치와 삶을 위해 여러 연구소 들이 있지만 생태문화연구소가 없는 것처럼

 온배움터라는 이름을 쓰고 있더라도 온배움에 대한 연구는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함양의 온배움터가 제 몫을 할 수 있도록 온배움의 씨알을 나누고자 합니다. 적어도 온전함을 위해 배우게 하는 씨알 말입니다.

스스로 공부할 거리를 가지고 그 곳에서도 온전함으로의 배움을 나누는 샘물이 되고자, 온배울 모임을 꾸려봅니다.

  온전함에 대하여 밝아지는 다음 날까지 옹기종기 모여  따뜻한 온기를 나눌 소중한 공부를 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