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1시가 취침시간이지만, 오늘은 눈치껏 노트북을 챙겨들고 사무실에 앉았습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몇일 전 부모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전화통화에서 엄마는 가족은 모여 살아야 한다고 빨리 오라고 하시고,
아버지는 잘 견디고(힘들다고 안했는데), 내년에 오면 건축기사 시험을 보라고 하십니다.

  인도에 오기전 단 한마디.
"집 잘지어줘라. 가난한 사람 집 지어줘라."고 하셨던 아버지.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효도. 건축기사 합격.
  약해지는 마음을 잡고, 아버지 말씀을 듣기로 합니다.

인도에 온지 5개월이 조금 지났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나름 안식년을 보내고 싶었던 저는 공동체 생활과 규모가 가장 큰 건축팀 재정을 관리하고, 매일 현장에 나가 공정을 지켜보고, 설계를 하고, 대안학교 학생들을 조율하는 등 다양한 업무에 지치기도 했고, 생태건축에서의 생태적 노동과 과정은 멀게만 느껴져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주변을 보면 감사한 것이 더 많고, 내게 주어진 기회와 애정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합니다.

그렇게 터닝포인트를 돌았고, 이제 14일이면 3일간 기차를 타고 북인도로 가서, 네팔국경을 통과 한 뒤 비자갱신을 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인도비자를 6개월을 줬는데 요즘은 3,4개월만 준다고 합니다. 예정보다 한국에 일찍 가게 될거 같아요. 남은 기간이 그리 길지않아서 있는동안 마을개발의 마스터 플랜과 현장에서 설계,시공일을 잘 마무리 할 생각입니다.


지난번에 올린 사진은 LWCC(Life World Community Center)의 축사와 원형교실 현장이었는데, 아직 완공을 못하고 거기서 멈추었습니다. 마을지도자들이 재산권을 문제로 공사를 방해해서 현장이 멈추었고, 대신 지난 두 달동안은 칼루르(Kallur)마을의 축사 한채와 강당을 지어왔습니다. 처음 설계한 건물이 세워진다는 설레임 보다는 예상치 못하게 주어진 큰 프로젝트 앞에서  어떤 책임감과 양심적인 문제들(잘 몰라도, 대충 넘어가려고 하지는 않음)을 다독이며 기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설계는 이 곳 환경(재료나 시공수준)을 이해하고, 순간순간의 최선을 다한 판단과  특별히 내세울 미학도 없어서, 공간에서 일어날 일들을 상상하면서 보기에 어색하지 않는 건물(스케일감과 비례감)을 짓는 것이 저의 살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공은 학부의 실습과정부터, 지리산트레일센터,북상주택,무주마을회관 등의 현장을 거치면서, 저도 어느새 다음 공정을 예측하고 준비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현지 매니저와 대표님과 상의해 가면서 좋은 답들을 낼 수 있어서, 강당은 기초공사가 끝났고, 축사는 지붕공사만 남겨둔 상태입니다.

간단히 사진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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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도 미리 논문주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건축교육에 관련된 부분이 가장 흥미가 갑니다. 아직 모호한데요, 좁게는 우리나라의 건축교육에 대해 살펴볼 수도 있고, 바우하우스, AA....우리 학교의 학풍, 목표, 어떤 수업들이 이루어 지는지, 건축교육의 다양한 가능성등 앞으로 학교의 방향을 정리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논문이면 좋을 거 같습니다.

아직도 저의 노트북에는 5개월째 “건축교육에는 모호함이 필요하다. 건축은 창조적인 분야야기 때문이다.”라는 메모가 너덜거리고 있습니다. 건축을 통해 많은 것을 누렸고 배워왔는데 늘 건축자체에는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이곳에서 조금은 다가갔다고 생각합니다.

연말 잘 보내시구요. 여긴 아직도 한 여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