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짙어가는 오월입니다. 이 시기의 짙은 초록보다는 4월의 연두 빛깔이 더 맘에 다가옵니다. 여리고 순해 보이지만 생명을 틔우려는 강인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녹색대학이 새로운 문명을 일구는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나선 것이 올해로 10년이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학교는 온배움터라는 이름으로 개명도 했습니다.

2003년에는 새로운 배움과 만남으로 기대와 희망이 넘쳐났고, 현재 2013년은 그 모든 것이 희미해져 막다른 길에 들어선 형국입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강산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인데 온배움터는 그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정체한 듯 보입니다.

아니, 지탱하기조차 버거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문명을 일으키고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것은 생태문화공간을 창조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어 갔지만 그곳에서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춤거립니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시간을 거슬러 초심으로 돌아가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2003년에 1기로 입학해서 서울에서 학교를 오간 것이 4년, 학교 일을 하면서 농(農)을 받들고 농부(農夫)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스러져가는 농촌공동체를 재생시켜보겠다고 내려 온지 7년째에 접어듭니다. 황금 같은 삼십대를 학교와 함께 했고 불혹을 넘긴 사십이 넘어서도 학교 주변 마을에서 살면서 들락날락 합니다.

 

몇 년전 부터는 학교가 꼴 보기 싫고 근처에 가기도 싫었습니다. 학교로 인해 이곳에 왔고 이곳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려 했는데 그것이 뿌리 채 뽑히는 상실감이 컸습니다.

바라던 학교의 모습은 없었고, 아니 어렵고 힘들다는 것은 알고 시작했지만 다만 그것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그것마저 사그라들면서 성찰과 연민의 기초위에 실천을 얘기하지 않고 무성한 말만 늘어놓는 회의나 토론 모임이 무의미하게 다가왔습니다. 진정한 변화가 없이 반복되는 일들은 여기 있어야 할 의미를 주지 못했고, 그래도 어쩌지 하는 맘에 속으로 끙끙대기만 했습니다.

만약 학교 건물이 없었다면 진작에 흩어져 제 갈길 갔을 사람들인데 이 건물이 있어서 미련을 못 버리고 남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들어서면서 신앙적 성찰을 통해서 이곳에서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고 학교와 주변을 다른 각도에서 보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 온배움터가 사라져도 이 세상이 무너지지도 않고, 삶이 여기서 중단되지도 않는 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학교가 연이 되어 왔지만 이곳에 온 이유는 학교가 다가 아니라는 것, 그것을 통해 인연을 맺은 많은 사람들, 생명들이 새로운 연으로 엮여 살아가고 저도 그 안에 있는 것 자체가 존재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그 1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도 변함없이 학교를 후원하고 나아질 기미가 별로 없어 보이는데도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샘들과 녹지사, 그리고 학교를 거쳐 마을에 사는 이제는 주민이 된 물님들.

학교가 연이 되어 이곳에 왔지만 이곳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려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학교를 염려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니 이 모든 이들이 새로운 희망이고 기대가 되었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도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줄 수 없는 배움이었고 그것을 통해 우린 상하고 다쳐서 피를 쏟아냈지만 그것으로 인해 더 강해지고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더불어 일을 만들어 가야하는지를 배웠습니다.

 

10년, 이제 온배움터는 다시 길 위에 섰습니다. 이 길은 그동안 걸어왔던 길과는 다를 것입니다. 비록 분열과 좌절의 시간이 더 많았지만 그 십년의 길에서 쌓인 경험과 배움은 새로운 문명을 열고, 생태문화공간 창조하는 일에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2003년 1기 물로 들어와 2013년 11기 운영위원장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학교 운영위원으로, 사무처장으로 지내며 학교 일을 하다가 마을주민으로 수수방관자로 있다가 아직도 학교를 위해 애쓰는 이들을 보면서 다시 맘을 추스르고 할 수 있는 일을 돕고 작은 힘을 보태고자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지나온 10년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가운데 새로운 10년을 준비합니다. 재정이 없어 손을 못된 학교 시설도 보수하고(곧 구체적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학교의 근간인 배움의 내용을 준비하면서 새 식구를 맞이하려고 합니다. 이미 그 준비는 시작됐습니다. 샘들은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학교 현안을 고민하고, 샘들이 먼저 공부하고 서로에게 배우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온배움터가 이 시대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명확합니다. 비록 사람이 적게 오고 세간의 관심이 덜하지만 우리가 왜 있어야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만 갖고 있다면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길을 가다보면 함께 이 길을 걷는 분들을 만나리라 믿습니다.

 

온배움터는 이 길 위에 함께 서 있는 모든 분들의 것입니다. 모든 이들의 배움터이며 쉼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