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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와 자본주의

네덜란드의 대기화학자로 노벨상을 수상한 파울 크뤼천(Paul Jozef Crutzen)은 2002년 저명한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1쪽짜리 짧은 글을 발표했다. 제목은 ‘인류의 지질학(Geology of mankind)’인데 좀 알쏭달쏭하다. 이 글에서 그는 “지구적 환경에 인간이 미치는 영향이 지난 3세기 동안 증가했다. 인간의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앞으로 수천 년 동안 지구의 기후가 자연적 흐름으로부터 크게 벗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지금의 시대는 압도적으로 인류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지질학적 시대 구분에 있어서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제안했다.

지질학적으로 우리의 시대는 신생대 제4기 ‘홀로세(holocene)’를 살아왔다. 홀로세의 시작은 약 1만2000년 전 지구의 빙하기가 끝나고 온난한 기후가 시작되면서부터다. 20만 년 전에 처음 지구에 출현한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는 거의 19만 년 동안 구석기시대인으로 수렵·채집을 하며 살아오다가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뼈가 빠지도록 일해야 하는 농부가 됐다. 이 변화는 인류의 생활 방식의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지만 최초로 지구 안에서 농토를 개간함으로써 자연을 변형시킬 수 있는 존재가 출현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홀로세 시작 이후 18세기까지 자연은 이러한 변형에도 불구하고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인류의 과학기술이 지구 환경에 압도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대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을 필두로 시작된 산업혁명을 계기로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크뤼천도 지적했듯이 18세기 말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급증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공교롭게도 1784년 제임스 와트가 개량된 증기기관을 제작한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이로부터 2세기가 넘게 지난 지금의 우리 지구는 온실가스 농도와 평균 기온이 폭등하여 원래대로 되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며 현대과학과 기술의 결합으로 과거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수많은 오염물질들과 강력한 온실가스들이 계속 쌓이고 있는 상황이다. 전 세계에 창궐하는 코로나19 역시 온난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앞으로도 바이러스의 위협은 계속될 것이다. 각국이 지금까지 여러 차례 국제기후협약을 시도하고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의 미온적 자세는 목표 달성을 의심케 한다.

현재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물리적 생태환경만이 아니다. 생태위기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자본주의는 1980년대 공황 이후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도입했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를 거치며 미국 헤게모니가 저물고 있지만 자본주의는 더 이상 식민지화할 외부 시장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결국 그 타깃을 내부 국민으로 바꿨다. 이로써 중산층이 붕괴되고 현대판 노예라 할 만한 수많은 비정규직을 낳게 했으며 결국 사회 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향하고 있다.

더불어 4차 유전공학, AI 로봇공학 등이 어울린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거대한 변화로 인간성 자체에 대한 혼란과 함께 성차별·인종차별·소수자 차별과 같은 인간 주체성의 위기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철학자인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는 ‘세 가지 생태학’에서 위에서 언급한 환경, 사회 시스템, 인간 주체성의 세 영역의 윤리-정치적 ‘접합’을 통해서만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고 역설했다.

분명 지금은 물질과 정신적 측면에서 동시에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또한 위기는 매우 실낱같은 가능성이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현재의 위기들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 문제들을 개별적이 아니라 통합과 연대의 방식으로 협력해 풀어야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새롭게 나아가야 할 사회의 비전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 일은 어느 국가든 정치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결국 시민사회의 지혜를 모으고 실천해야 한다고 본다. 과학자들이 지금을 인류세라 규정한다는 것은 또 한 번의 대멸종이 다가오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지순협대안학교 교수·‘시민의 물리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