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 육 사 상 사 ] 놀이가 아동의 본성인가?
 
김태정·평등교육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기사입력 2015/07/10 [15:42]

 자신을 진보적인 교육운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자임하는 사람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아동을 마음껏 놀게 하는 것이 진보적인 교육방법이라고 믿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노는 게 공부하는 것이다'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심지어 아동의 본성은 놀이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20세기 초반 구미에서 유행했던 이른바 신교육운동(혹은 진보교육운동)에 참여했던 일부 교육학자들도 그런 견해를 가졌다. 예를 들어 벨기에의 드크롤리는 아동을 행하게 만드는 동인을 놀이에서 찾았다. 스위스 루소 연구소 클라파레드 또한 놀이를 아동 본성의 본질적 성향으로 보면서, 아동이 놀이에 몰두하고 격려 받을 때 의미 있는 학습 성과로 이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바로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 중 하나가 프랑스의 프레네였다. 그는 일 보다 놀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은 일의 창조적이고 형성적인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며, 일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일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게 된다고 문제제기 하였다. 또한 놀이를 교육의 토대로 삼는 것은 아이들을 더 이상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존재로 만든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아동의 본성은 '놀이'가 아니라 '일'이라도 단언하였다. 그는 "가장 이른 나이에서부터 삶에 생기를 주고, 가정과 공동체의 일상적인 영역 속에서 건강하고 역동적인 만족감을 주는 최고의 효소는 놀이가 아니라 일이다"라고 하였다. 프레네는 아동이 일을 충분히 한다면 더 이상 놀고자 할 욕구를 갖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왜 아동은 다양한 놀이를 하는가?

 그는 이를 일과 놀이의 관계를 통해 설명한다. 예를 들어 새끼 고양이가 어미 고양이를 따라 생쥐를 움켜잡는 동작을 모방하는 것처럼 아이들은 어른과 함께 혹은 어른을 따라 할 수 있는 다양한 노동의 형태 즉 '일-놀이'를 한다. 그런데 이런 '일-놀이'를 할 수 없을 때, 아이들은 이와 유사한 활동을 찾으려고 하는데 이것이 '놀이-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개체로서의 생존과 종의 보존을 위한 다양한 활동과 연관된 것이다. 그는 숨바꼭질, 술래잡기, 추격하고, 가두고 묶고 풀어주는 놀이들, 피난처 만들고 전쟁을 하는 놀이, 엄마-아빠 놀이, 소꿉놀이, 실재 동물 기르기나 장난감 동물 가지고 놀기 등을 예로 들었다. 한마디로 '놀이-일'은 본능적 활동이자 아동을 사회적인 존재로 만드는 활동인 것이다.

 한편, 아동의 본성을 일 즉 노동으로 이해하였던 프레네는 "내일의 학교는 '일하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이를 교육과정으로 포함시켰다. 흔히 이는 노작교육으로 이해되는데 이는 단지 수(手)작업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노력을 수반하는 모든 창조적 활동을 포함한다. 이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발달을 돕는 그의 종합기술교육론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프레네 교육을 자유로운 글쓰기, 인쇄출판 활동, 학급신문, 문집, 전시회 등 드러나는 그 외연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프레네 교육의 핵심정신은 바로 일, 즉 노동을 인간 및 아동의 본질로 파악하고 이를 교육과정과 연계시켰다는 점이다. 일-노동을 아동의 본성으로 파악하고 있는 프레네 교육이 새롭게 재음미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