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기는 누구인가?

1803(순조 3)~ 1877(고종 14).

조선 말기의 실학자.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을 계승하면서 그것을 더욱 전진적으로 전개시켜 근대적 개화사상에 연결시키는 교량적 역할을 수행했다.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운로(芸老), 호는 혜강(惠崗)·패동(浿東)·명남루(明南樓)·기화당(氣和堂)·가산제경루(舸山霽景樓).

아버지는 치현(致鉉)이며 종숙(從叔) 광현(光鉉)의 양자로 들어갔다. 김정호(金正浩)·이규경(李圭景) 등과 교유했다. 1825년(순조 25)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 연구에 전심했다. 1872년 큰아들 병대(柄大)가 조정의 시종(侍從)이었으므로 관례에 따라 노인직(老人職)으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 죽은 뒤 1891년 학행(學行)으로 계문(啓聞)되었고, 1892년 도헌(都憲)겸 좨주(祭酒)로 추증되었다.

 

최한기는 우주가 기(氣)의 산물이라고 보았으며 이(理)는 기의 조리(條理)이며 기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으로 "기가 있으면 반드시 이가 있고 기가 없으면 이도 없다"고 하여 주자학에서 주장하는 이의 일차성·절대성을 부정했다(→ 색인 : 기일원론). 그는 기를 '신기'(神氣)라고 표현했는데 이 신기는 단순히 물질적 존재의 근본형태에 그치지 않고 신의 공용(功用)으로 활동하는 힘이 있어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이러한 신기의 운동변화의 법칙을 '운화(運化)의 이'로, 그 객관적 자연법칙이 주관적 의식에 반영되는 사유의 법칙을 '추측(推測)의 이'로 구분했으며 이 양자가 일치를 이루어 인간과 우주의 조화를 성취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그는 인간은 사유기관과 감각기관을 갖추고 있어 세계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선천적인 지식이란 없으며 외부의 물질대상에 대한 신기의 경험을 통해서만 인식이 이루어진다. 이때 주체의 신기와 사물의 신기를 통하게 해주는 것은 인간의 감각적 지각과 견문을 통한 경험이다. 즉 감각기관을 통해 경험된 지각은 경험의 축적으로 생긴 기억과 변통(變通)을 통해서 양적 확충을 할 수 있으며, 추측을 통해 경험하지 않은 것에까지 인식의 영역을 넓힐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모든 사물이 운동·변화하며 그 법칙도 변한다고 생각했다. 사회나 인간은 끊임없이 운동·변화해야 자연법칙을 어기지 않게 되며 이를 어기면 폐해가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와 인간의 자연법칙을 위반하고 전진을 방해하는 것이 있을 때는 그 장애를 인간의 힘으로 제거하고 자연법칙에 맞추는 변통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변통의 사상은 그의 사회정치사상에 밀접하게 관련되었다.

 

최한기는 국가와 세계는 하나의 도덕으로 지배되어야 하며 그 도덕적 기초는 '인'(仁)에서 출발하는 박애·자애라고 보았다. 그래서 유교적인 정치이념을 바탕으로 하여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결합한 사상을 가진 계몽된 군주와 인재에 의한 '인정'(仁政)을 정치적 이상으로 생각했다. 즉 봉건왕조의 왕권을 인정하는 가운데 종래의 정치적·사회적 모순을 개혁하려 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귀천에 관계없이 사회 각 분야의 재능 있는 사람들을 두루 포괄하여 등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세계의 발전추세를 알고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서는 개국(開國)을 하여 외국과 왕래함으로써 그 나라의 문물제도를 취사선택하여 문명을 도모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하여 대동(大同)의 개념을 이상사회론의 중심 이론으로 전개했다. 그는 종래의 고정적 신분개념인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사민(四民)을 사회적 분업으로 이해했으며 수공업자와 상인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여 상공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해 가던 당시를 천하의 물산이 만국에 주통(周通)하는 시대라고 하면서 상업의 의의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실학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농업·토지문제에 대해서는 지주제적 토지소유관계를 유지한 상태에서의 농업기술의 발달과 상업적 농업, 분업화를 주장하는 등 개량적 사회개혁을 추구했다. 천문·지리·농학·의학·수학 등 학문 전반에 걸쳐 박학했으며, 서양 학문 및 과학기술을 도입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그의 저서와 편서를 모아 펴낸 〈명남루총서 明南樓叢書〉가 있다.

<다음 브리태니커 사전 중>

 

神氣通序[崔漢綺] 


天民形體。乃備諸用。通神氣之器械也。目爲顯色之鏡。耳爲聽音之管。鼻爲嗅香之筒。口爲出納之門。手爲執持之器。足爲推運之輪。總載於一身。而神氣爲主宰。從諸竅諸觸。而收聚人情物理。習染於神氣。及其發用。積中之人情物理。從諸竅諸觸而施行。卽踐形之大道也。色從目通而天下之色。皆爲神氣之用。聲從耳通而天下之聲。皆爲神氣之用。臭味諸觸。具通於口鼻手足。而事物之運動。皆爲神氣之用。閱歷經驗。推移變通。源於形體。委於事物。若不修明發用之源。何以整頓發用之委哉。蓋人稟天地之氣。父母之質而生。目視耳聽。鼻嗅口味。手持足行。渴飮飢食。乃形體所具之用。雖昏愚蠢動。皆能行之。是天生之使通也。就其所通。積累測驗。祛浮華而存精實。除晦昧而擇光明。人之平生事業。惟在見聞閱歷。分開善惡利害而勸懲事物。測得淺近者。不如深遠。偏僻者。不如公共。念所用而收貯。推所貯而發用。如斯而已。更無他道。欲過於此而究竟天地人物。所以然之理。涉於虛無而多不可知。縱能說道而舌敝。孰使之信也。又欲後於此而固必禍福吉凶。竟符應之理。人事時運。變幻無常。猶難諶斯。況復見聞終闋之後乎。掃除前後過度之學踰越之術。自有眞正大道可循之軌。捨此耳目口鼻手足諸觸。有何一毫可得之理可驗之事乎。雖有此諸竅諸觸。若無神氣之記繹經驗。平生屢聞數見之事物。皆是每每初聞見之事物也。雖有此諸竅諸觸。及神氣記繹。若無參酌物我。臨機變通。泥古之歎。無權之譏。烏得免也。雖得諸竅諸觸神氣之收聚發用。無有欠缺。若或以無用無實不可知不可驗者。涉於其間。使非純一也。念到于此。尙恐不逮。何暇及他。語其知識收聚。刱業功臣也。語其須臾不離。左右輔弼也。專攻心學之人。以諸竅諸觸爲卑屑。而貪究性命之理。淸淨守眞之人。以視聽爲耗精。而甘作聾瞽之事。醫書辨說。以發外之疾病。附會於臟腑穴脈。相書所言。以形局色態。欲占窮達壽夭。俱未免乎過不及之差也。耳目口鼻。豈徒爲耳目口鼻。必有函體之神氣。通於耳目口鼻。爲神氣之耳目口鼻。推達於天地人物所同之聲色臭味。內外相應。彼此參驗。取於人以爲善。擇諸物以爲用。原無法而有法。自有法而無方。通與不通。變與不變。先使瞭然分開。以所通推測其不通。以不變推測其變。如形之於影。聲之於響。柯則在邇。障遮不遠。其所通達。不過大略斟酌。難得盡其曲節。若捨形體之所通。而求通於人物。又捨人物之所通。而惟究於虛影疏光。乃成德之人。氣質昏耗。近死者之所爲也。非睿學將進任重致遠者之所爲也。是以。有是器者。捨是器而求用。則乃非是器之爲用也。用與不用。何關於是器。有形體者。捨形體而求學。則乃非形體之爲學也。學與不學。無關於形體。索隱行怪。由此而興。故用以器械爲本。學以形體爲本。

道光丙申仲秋。崔漢綺書于舸山海景樓。




신기통 서(神氣通序)



하늘이 낸 사람의 형체(形體)는 모든 수용(須用)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이 신기를 통하는 기계(器械 귀ㆍ눈 등 신체의 기관)이다. 눈은 색을 알려주는 거울이고, 귀는 소리를 듣는 대롱이고, 코는 냄새를 맡는 통(筒)이고, 입은 내뱉고 거둬들이는 문(門)이고, 손은 잡는 도구이고, 발은 움직이는 바퀴이니, 통틀어 한몸에 실려 있는 것이요, 신기(神氣)는 이것들의 주재(主宰)이다.

제규(諸竅 인체에 있는 외부와 통하는 아홉 구멍)와 제촉(諸觸 인체에 있는 여러 촉감 또는 그 기능)으로 인정(人情)과 물리(物理)를 거두어 신기에 습염(習染)하고, 그것을 발용(發用)할 때에는 속에 쌓인 인정과 물리를 제규ㆍ제촉을 통하여 시행하는 것이 비로 천형(踐形 부모와 하늘로부터 받은 본성과 형체의 바른 기능을 어김없이 실현하는 것)하는 대도(大道)이다.

빛이 눈을 통해야 천하의 빛이 모두 신기의 용(用)이 되고, 소리가 귀를 통해야 천하의 소리가 모두 신기의 용이 되고, 냄새와 맛과 모든 촉감은 모두 입과 코, 손과 발로 통해야 사물의 운동이 모두 신기의 용이 된다.

열력(閱歷)하고 경험(經驗)하며 추이(推移)하고 변통(變通)하는 것이 모두 형체에 근원하여 사물에서 끝나는 것이니, 만약 발용의 근원을 닦아 밝히지 아니하면 어찌 발용의 끝을 정돈할 수 있겠는가.

대개 사람은 천지의 기(氣)와 부모의 질(質)을 받아 출생한 것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맛보며 손으로 잡고 발로 다니는 것과 목마르면 마시고 주리면 먹는 것은 바로 형체가 갖추고 있는 용(用)이다. 비록 어둡고 어리석은 준동(蠢動 곤충 따위가 굼틀거리듯 미미하고 무지한 사람을 비유한 것)이라도 모두 이러한 일만은 넉넉히 실행하고 있으니, 이것은 하늘이 나면서부터 통하게 한 것이다.

그 통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추측과 경험을 쌓아 나가되, 부화(浮華)한 것을 제거하여 정실(精實)한 것을 보존하며, 회매(晦昧)한 것을 제거하여 광명(光明)한 것을 가려 취해야 한다. 사람이 평생 동안 해야 할 사업이란 오직 보고 들으며 열력해서 선악과 이해를 분별하여, 사물을 선에 이르도록 권하고 악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데 있을 뿐이다.

헤아리고 증험하여 얻는 내용이, 천근(淺近)한 것은 심원(深遠)한 것만 못하고 편벽된 것은 공공(公共)된 것만 못하다. 쓸 것을 생각하여 거두어들여 저장하고 저장한 것을 미루어 발용하는 것이라, 이같이 하는 것 이외에 다른 도리는 없다.

그런데도 여기서 지나쳐 천지와 인물의 소이연(所以然)의 이치를 궁구한답시고 허무하여 전혀 알 수 없는 데로 빠져들어 가면, 비록 혀가 닳도록 도를 말한다 하더라도 어찌 그것을 믿게 하리요. 또 길흉 화복(吉凶禍福)과 부응(符應)의 이치를 굳게 기필하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일과 시운(時運)은 변화가 무상한 것이라, 오히려 이 생애의 것도 믿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보고 들을 수 없는 죽은 뒤의 일이겠는가.

전후(前後)의 법도를 지나친 학문과 평상에서 벗어나 초월하는 술법 따위를 제거하면, 자연히 진정한 대도의 따를 만한 법이 있을 것이다. 이목구비(耳目口鼻)와 수족(手足)과 제촉(諸觸)을 버린다면, 어찌 한 터럭만한 이치인들 얻을 수 있으며 한 가지 일인들 증험할 수 있으랴.

그렇지만 아무리 이러한 제규(諸竅) 제촉(諸觸)이 있어도 만약 기억하고 단서를 찾아 궁구하고 경험하는 신기(神氣)가 없다면, 평생 동안 여러 번 듣고 자주 보는 사물이라도 매양 처음 대하는 사물과 같을 것이다. 또 아무리 이러한 제규ㆍ제촉과 기억하고 궁구하는 신기가 있다 하여도, 만약 물아(物我)를 참작하여 임기응변(臨機應變)하는 변통이 없다면, 고례(古例)에만 얽매이고 적절히 변통하지 못하여 생기는 한탄과 시의(時誼)에 따라 변통하는 권도(權道)가 없다는 비웃음을 어찌 면할 수 있으랴. 아무리 제규 제촉과 신기의 수취(收聚)와 발용에 아무런 결함이 없다 하더라도, 만약 조금이라도 쓸모없고 실리가 없으며 알 수 없고 증험할 수 없는 것이 그 사이에 끼여들게 되면 즉시 순일(純一)하지 못하게 된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름에 오히려 이것을 달성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어느 겨를에 다른 것을 생각하리요. 지식을 거두어 모으는 것으로 말하면 창업(創業)의 공신이요, 잠깐도 여기에서 떠나지 않는 것으로 말하면 좌우의 보필하는 신하이다.

그런데 저 심학(心學)을 전공하는 사람은 제규 제촉을 비루하고 지엽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성명(性命)의 이치를 탐구(貪究)하며, 청정 수진(淸淨守眞)하는 사람은 보고 듣는 것을 정기를 소모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귀머거리나 소경의 행세를 기꺼이 하며, 의서(醫書)의 변설(辨說)에는 외부에 나타난 질병을 장부(臟腑)나 혈맥(穴脈)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서로 맞지도 않게 억지로 끌어다 대며, 상서(相書 관상서)에서 말하고 있는 형모(形貌)와 격국(格局 사람 몸의 모양을 오행(五行)으로 나눈 것)이나 혈색과 태도로 그 사람의 곤궁ㆍ영달과 장수ㆍ단명을 점치고자 하는 것 등등은 모두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잘못을 면할 수 없다.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어찌 한갓 그 이목구비의 외형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리요. 반드시 형체에 들어 있는 신기가 이목구비에 통한 신기의 이목구비이다. 그러므로 이로써 천지와 인간 만물이 한가지로 통하는 소리와 빛과 냄새와 맛에 미루어 나가면, 안과 밖이 서로 응하고 저것과 이것이 서로 비교되고 증험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에서는 선이 되는 것을 취하고 물건에서는 쓰임[用]이 되는 것을 취하면, 법이 없는 것을 근거하여 법이 있게 되고, 법이 있은 뒤에도 한 방소에 집착하여 막히는 일이 없게 된다. 통하고 통하지 않는 것과 변하고 변하지 않는 것을 먼저 뚜렷이 분별하고, 이미 통한 것을 가지고 아직 통하지 못한 것을 추측하고 변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변하는 것을 추측한다. 그 관계는 마치 형상에 그림자가 따르고 소리에 메아리가 응하는 것과 같아, 그 법칙은 가까운 데 있고 가려 막는 것도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로써 통달하는 것은 대략을 헤아려 짐작한 것에 지나지 않는지라 자세한 세부의 곡절을 다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만약 자기 형체에 있는 통하는 것(제규ㆍ제촉의 여러 기관을 말한다)을 버리고 사람이나 사물에 통하기를 구하거나, 또는 사람이나 사물에 통한 것을 버리고 오직 허망한 그림자나 번득이는 빛(심학이나 도교 따위의 허망한 이론을 말한다)과 같은 것을 궁구한다면, 이는 바로 덕을 성취한 사람의 기질이 어둡고 쇠잔하여 죽음에 가까운 자나 하는 짓이고, 학문을 깊이 통하여 장차 무거운 책임을 지고 원대한 목적에 도달하려고 하는 사람의 하는 일은 아니다.

이런 까닭에 이 그릇[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 그릇을 버리고 다른 것에 쓸 것을 구하면 이는 바로 이 그릇의 용(用)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쓰거나 쓰지 않는 것이 어찌 이 그릇에 관계되는 것이랴. 또 형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형체를 버리고 다른 것에서 학문을 구하면 이는 형체의 학문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배우거나 배우지 않거나 형체에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은벽한 것을 탐색하고 괴이한 일을 행하는 것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므로, 쓰는 것은 기계(器械)로 근본을 삼고 학문은 형체로 근본을 삼는다.


도광(道光) 병신(헌종 2, 1836) 중추(仲秋)에 최한기(崔漢綺)는 가산(舸山) 제경루(霽景樓)에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