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 발 씻겨주는 평교사 출신 녹지사, 장휘국 광주 교육감

 

 새로 소식지에 마련된 이달의 녹지사로서 첫 번째로 장위국 현 광주광역시 교육감을 소개합니다.

장휘국 교육감은 초등학교 교사, 중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지난 지방선거에서 광주광역시에서 당선되어 서울, 경기, 강원, 전북, 전남 등 6개광역권의 진보적인 민선 교육감으로 개혁적인 정책들을 활발히 펼치고 있습니다.

현장 교사시절에도 부지런하시면서도 말보다 실천이 앞서신 열심히 활동하신 참 스승이라는 호평을 제자들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특히 제자들을 일일이 세숫대야에 발을 담그게 하여 손수 발을 씻겨주시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던 일화는 그를 제자 발 씻겨주는 교육감이라는 호칭으로 많은 화제거리가 되었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손수 발을 정성들여 씻겨 주시는 장휘국 녹지사님에 대해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1989년도엔 전교조 활동으로 현장에서 해직되신 고통을 당하시는 등 어려움도 겪기도 하였습니다.

해직이후에도 참교육을 실천을 위하여 전교조 광주지부 사무국장 등의 어려운 일들을 수행하엿습니다.

전교조 결성이전에도 교사협의회 활동을 하신 정의롭게 사신 분입니다.

교단으로 복직이후에 전교조 광주지부장, 교육위원 등으로 현장에서 주어진 역할을 피하지 않고 꾸준히 하신 존경스러운 녹지사이십니다.

녹대 초기부터 회원으로 꾸준한 격려도 해 주시면서 제도권밖의 대안학교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함께 격려도 해 주시었습니다.

특히 따님이신 장일안님은 녹색교육학과 1기로서 녹대 여울 등으로도 활동하시었고 현재는 실상자 작은학교 교사로 녹대에서의 배움의 의미를 현장에서 펼치고 있는 부녀가 온배움터 가족이십니다.

환경, 생태에도 관심을 갖고 청소년 환경학교 교장, 무등산보호단체 협의회 의장 등 지역의 어르신으로서 역할도 도맡아 해 주시었습니다.

학창시절 너무 가난하여 납부금은 제 때에 내 본적이 없으며 미납으로 인하여 등교정지로 결석처리가 빈번히 되고 점심시간엔 아예 수돗물을 마시거나 도서관에서 책만을 보아야 하는 애환이 있어 가난하고 소외된 학생들에게 우선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어려운 시절 자신을 도와 준 고모의 신앙심에 감동을 받아 신앙생활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경쟁의 사막에서 상생의 늪을 발견하다”의 책을 펴내면서 아래와 같이 진솔하고 따뜻한 내면의 마음을 드러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가끔 해넘이를 보고 있노라면 살아온 모습이 떠올라 감회에 젖곤 한다.

그때마다 즐겁고 행복했던 모습보다는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이 더 많이 생각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참 잘도 견뎌온 나날들이다.

어린 시절 물로 배를 채우던 일, 가난이 불편함을 넘어 차별받는 것에 분하고 억울하다는 마음보다는 설움으로만 다가온 기억들이 많다. 왜 분하고 억울하다는 마음과 저항하려는 모습이 전혀 없었는지 모르겠다.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내 삶의 3분의 2를 바쳤다. 그 시간들을 돌아보면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낸 날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다 싶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나름대로 아이들에게 다정다감하고 좋은 선생님, 실력있는 선생이라는 칭찬을 받기 위해 애썼다.

햇병아리 교사 시절에는 정말 잘 가르치는 교사라고 인정받기 위해서 무척 노력했다.

그러나 곧 그보다는 다정학고 좋은 선생님이 더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했다.

늘 부족함을 절감하면서 ‥‥

생각이 많고 노력할수록 벽도 높고 어려움이 많았다.

지치려고 할 무렵에 나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현실을 바꿔보려고 몸부림치는 교사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었다. 혼자가 아니고 여럿이 함RP 힘을 모으면 바꿀수 있다는 희망에 들떳다.

숨죽이고 가만히 있기보다는 분하고 억울함을 밖으로 나타내고 표현하면서 저항하는 것이 변화와 개혁의 원동력이자 더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키는 대로 하고 주는 대로 받는 노예같은 줄종의 삶을 떨치고 일어서는 모습에 전율을 느꼈다.

침묵이 금이 아니라 굴욕이고 비굴함일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지금은 내가 손해보고 희생되더라도 머지않아 그 가치가 실현된다고 굳게 믿었다.

또 많은 사람이 손잡고 함께 반걸음씩 걸어가면 더욱 속히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교육운동에 함께 하게 되었다.

군부독재의 연장이었던 정권의 탄압은 엄혹하고 집요하였다.

밥줄을 끊고 거리로 내몰았다.

1,500여 명의 교사를 교단에서 쫒아내는 초유의 폭압 속에 해직의 아픔은 컸지만 교육과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더 컸기에 견디고 이겼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잊을수 없는 시절이다.

20여 년간 참교육운동의 대열에서 조금도 벗어나거나 비켜서지 않았다.

때로는 맨 앞에서 깃발을 들고 달려가거나, 모진 탄압에 맞서 꿋꿋하게 서있기도 했고 떄로는 뒤에서 응원하며 힘을 내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많은 부조리와 불합리한 것들을 고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고쳐지지 않은 것들이 많고, 오히려 더 나빠진 일들도 있다.

그래도 개혁적으로 진보한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지금은 잠시 어둠이 짙을지라도 내 힘이 다해 쓰러지지 않는 한 멈추거나 이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돌아보면 가족들에게 참 미안한 날들이었다.

어린 시절 힘들고 어렵게 산 경험을 생각하면 생활의 안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일정한 수입이 있다해도 힘든 살림살이를 생각하면 가장으로서 무책임한 처사였다고 반성한다.

가족들은 뻔뻔하게 살아온 내가 많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한 마디 불평도 없이 오히려 힘들어 할 때 위로하고 격려해 준 아내에게 정말 미안하다.

감사하다는 말만으로는 갚을수 없지만 이 말밖에 줄게 없다.

또 아버지의 손길과 정이 더 필요한 시기에 교육운동한다고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잘 자라준 아이들에게 정말 감사한다

(자료정리 온배움터 대표 이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