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고됩니다.농업은 간단하지 않습니다.오래된 농부는 수행하는 구도자를 닮았습니다.

 많은 귀농인들은‘자립형 소농’을 꿈 꿉니다. 자발적 가난을 각오합니다. 농사를 전업 삼는 생태귀농은 진보적이고 도덕적입니다. 깨끗하고 아름답습니다. 다만 실용적이기도 하고 지속가능하기까지 하면 정말 좋겠습니다.

   오늘날 생활이란 현실은 귀농인이 하방한 마을까지 따라붙습니다. 처자식을 먹여살리는 가장으로서의 책무는 늘 무겁습니다. 불의에 맞서고 약자를 보살피는 인간의 품격이나 예의조차 챙기기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마음 보다 몸이 저지르는 짓들입니다.

도시의 소시민들은 도시라는 아사리판을 벗어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현대 자본주의의 그 난민촌을 탈출하고 싶습니다. 자발적 유배라도 떠나고 싶습니다. 어서 사람 사는 마을로 내려가 사람 행세를 하고 싶습니다. 귀농하고 싶습니다. 다만 농사지어 먹고 살 자신이 없습니다. 소농으로 자립할 기술도 모자랍니다. 날로 돈은 떨어지고 힘은 빠집니다. 젊은 날의 용기와 지혜마저 옅어지고 흩어집니다. 앞날이 불안합니다.

   그럴 때, 방법이 있습니다. 어설픈 낫과 호미 보다, 저마다 도시의 소시민으로 용케 버티면서 챙겨둔 생활의 농기구를 꺼내드는 겁니다. 치열한 도시의 직업전선에서 갈고 닦은 경험, 기술, 노하우, 지식정보 같은 빛나는 무형자산 말입니다. 이 생활의 무기들만 잘 챙겨 짐을 꾸리면 당당히 귀농할 수 있습니다. 지역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외지인이나 주변인이 아닌 주체적인 마을의 시민으로 나설 수 있습니다. 예측가능하고 지속가능한‘생활귀농’이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농부들만 모여 사는 마을은 온전하지도 않습니다. 다채롭지 않습니다. 건강하지 않습니다. 재미가 없습니다.

모름지기 마을이라면 농부는 물론, 교사, 예술인, 연구원, 작가, 운동가, 성직자, 기업가, 기술자, 상인이 한 데 어우러져야 합니다. 그래야 마을은 우주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남 보다 더 많이 가져 짐이 되는 욕심과 욕망들을, 서로 나누고 덜어줄 수 있게 됩니다. 마침내 평화롭고 행복한 대동사회가 이루어집니다.

   여기 '작고 낮고 느린, 오래된 미래마을'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농사짓지 않는 귀농인으로, 소시민이나 농민이 아닌 ‘마을시민’으로 사는 새 길입니다.

마을을 먹여살리는 ‘마을기업’

농․산․어촌의 마을에도 기업이 필요합니다. ‘마을기업’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업은 사전적 의미의 기업이 아닙니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단위체’로서 기업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비록 자본주의 사회와 체제에 놓여 있지만,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지역공동체의 여러 특화자원(향토, 문화, 자연, 생태 등) 등을 활용해, 마을공동체를 위해, 더불어 설립하고 경영하는 지속발전 가능한 사업단위체‘로 마을기업을 정의내리고자 합니다.

   마을기업은 요즘 나라 안팎에서 시절의 유행처럼 따라 외치는 농촌형 사회적 기업, 농어촌 공동체회사,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그것과도 다릅니다. 얼핏 보면 상통하는 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사어는 아닙니다. 마을기업은 그냥, 마을기업입니다. 돌이켜보면 수년 전 어느 일간지에 글을 기고하며 이 말을 처음 만들어 썼습니다.‘마을기업을 세우자’라는 제안문입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는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불편하게, 때로 불쾌하게 다투어 몰려들어 살고 있다. 이렇게 특별시의 시민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각자의 사정과 사연을 들어보면 다 그만한 이유와 명분이 있다. '밥 먹고 살 거리'라든가 '폼 잡고 살 기회'가 온통 서울에 몰려있어 불가피하게 그리 되었다는 얘기다.

   좁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다보면 자칫 서로가 서로의 것을 빼앗아야 비로소 먹고 살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서로가 서로를 해코지하거나 끄집어내려야 비로소 제대로 완장도 차고 폼도 잡고 살 수 있다. 무소불위처럼 군림하는 대도시 자본권력에 빌붙어야 밥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수백만의 욕심쟁이, 비겁쟁이들. 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학교와 직장에서, 그리고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양육, 양산,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어찌 보면 이 불쾌하고 부조리하고 부도덕하게만 체감되는 경제 시스템이 현대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만병의 원인이자 본질이지 싶다. 이 뿌리 깊고 거대한 숙제부터 건드리지 않고 잘 먹고 잘 사는 대한민국을 노래하는 모든 행위는 위선이자 기만이다.

작고 낮고 느리더라도 서울 같은 대도시가 아닌 농․산․어촌 마을마다 '먹고 살 거리'를 만들자. 그것도 마을 사람 모두가‘더불어 생산하고 나눠 먹고 살 수 있는 생태적인 대안기업’을 만들자.

   각자가 품고 있는 생활과 생존의 가치와 철학에 따라 땀 흘려 농사지은 만큼만, 그래서 얻어진 만큼만 각자 알아서 먹고 사는 방법은 이기적이고 전근대적이다. 그동안 개별적 귀농인들의 수많은 시행착오에서 드러나듯 만성적으로 고통스럽고, 더불어 용기와 지혜를 나눌 여지도 없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은 위험한 생활 기법이자 생존술이다.

   그러니 마을 마다 ‘마을기업’을 만들자. 그래서 '먹고 사는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심지어 '남보다 한 숟갈 더 떠 먹으려는 욕심과 욕망'을 위해 대도시로 꾸역꾸역 몰려든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난민들 스스로, 도로 저마다의 마을로 하방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 주자.

  ‘마을기업’이란 가령,‘친환경 농업기반, 농촌경영체 중심, 도․농 상생 생활․생태공동체’ 같은 사업체다. 마땅히 자본금은 마을 공동기금,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투자금, 그리고 현금에 상응하는 온갖 현물을 종자돈으로 한다. 모자라는 시설자금과 운영자금은 여러가지 정부지원사업의 지원금으로 마련할 수도 있다.

   사업 구조는 1차 친환경 영농, 2차 농업바이오 가공, 3차 도․농 직거래 유통, 그리고 교육, 문화, 체험 등 관련 서비스를 아우르는 생태적이고 유기적인 농업벤처형 농업 경영체라면 유망할 것이다. 업무 조직은 농사를 잘 아는 마을 원주민 등 농민이 친환경 영농을 맡고, 기획, 관리, 마케팅, 생산가공, 정보화 등의 업무는 도시에서 그 일을 주로 하며 살아 온 귀농인이 맡아 하면 조화로울 것이다. 아울러 도․농 상생, 생태 대안, 지역 연대 등의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깔고 일하면 더욱 신명이 날 것이다.

   이렇게 친환경 영농, 가공, 유통을 통한 주수입원에 교육, 문화, 체험 등을 통한 부대수입을 보태고, 나아가 성공적인 마을기업 모델을 마을, 지역, 나라 안팎으로 전파하는 데 따른 파생 수입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

어느 마을이든 스스로 친환경농업 기반, 농촌 경영체 중심, 도농상생 생활. 생태마을공동체의 표본이 될 수 있다. 서로 어깨 걸고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그 길을 나선다면.“

 ‘마을기업을 세우자’는 제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오늘날 붕괴된 농․산․어촌 마을공동체의 재통합, 분열된 지역사회의 재결속이야말로 절박한 시대적 과제입니다. 아무로 부인하지 않습니다. 지속가능한 농촌생활을 담보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생업거리로서 '마을기업'이야말로 합리적이고 실용적이며 공정한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경제, 교육, 문화, 생태, 지역, 사회 등을 화두로, 도농교류․ 직거래, 생태체험, 로컬푸드, 대안교육, 대안기술, 생태건축, 문화예술 등 더 인간적이고 생태적인 사업거리가 '마을기업'의 품격에 맞을 것입니다. 마을농장, 마을공장, 마을가게, 지역유통, 농장마을 등은 ‘좋은 마을을 일으키는 경제기업’으로서 마을기업들입니다.마을학교, 농장학교, 지역교실, 체험마을, 교육마을 등은‘바른 마을을 일깨우는 교육기업’으로서 마을기업들입니다. 예술단, 문화원, 공방, 조사단, 박물관 등은‘열린 마을을 퍼뜨리는 문화기업’으로서, 생태건축가, 대안기술자, 대안대학, 사회복지원, 연구소 등은 ‘옳은 마을을 지키는 생태기업’으로서 마을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잘만 하면, '마을기업'은 마을에 사는 마을사람들의 단순한 밥벌이 수단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생태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을 소망하는 온 국민의 새로운 생활방식이나, 나라 경제의 대안이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