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보타의 기사문 올립니다.

super mario

1. 마리오 보타, 그는 어디서 왔는가?
건축가 마리오 보타는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스위스 사람이 되었습니다. 즉 스위스 출신이죠. 그는 연방 공화국 수립 700주년 기념 구조물을 비롯, 스위스의 여러 건물들을 지었기 때문에 거의 스위스를 대표하는 공식건축가처럼 여겨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보타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완강히 주장하는군요. 그가 태어나고 활동하는 티치노의 루가노는 남쪽의 스위스 내 이탈리아 권역의 전원적인 지방입니다. 이탈리아어를 사용하고 이탈리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지라, 보타 자신도 밝혔듯 문화적으로는 스위스보다는 이탈리아에 더 결속감을 느껴왔으며, 지중해 일대의 건축과 예술 전통을 공부해 왔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저 유명한 프란체스코 보로미니 Francesco Borromini가 티치노 출신인 이래, 이 지방에서는 걸출한 건축가들이 여럿, 대를 이어왔지요. 마리오 보타 역시 그런 건축가의 공방에서 도제식으로 건축을 배웠습니다. 1999년 마리오 보타가 보로미니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는 산 카를로 교회 San Carlo alle Quattro Fontane모형, 산 카를리노 San Carlino(위 사진)를 루가노 호숫가에 제작한 데에는 그런 까닭이 있습니다.(그러나 나무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아쉽게도 보존상의 이유로 올 여름, 철거될 예정이라 합니다. 지금 이 작품의 상태는 군데군데 썩어들어가고 있어서 접근이 통제되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 모습을 현지 취재한 기사가 다음달 <도베> 8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2. 단순한 육면체, 단수한 원통, 강남 한복판에 현대적 건물이 들어선 것인가?
  교보사옥은 칼로 잘라놓은 듯 가로와 세로가 반듯한 직선입니다. 최근 들어 건축물들에 흔히 등장하는 사선이나 곡선, 유기적인 형태 등은 어디서도 볼 수 없습니다. 이 건물을 지배하는 형태와 양감은 지극히 기하적입니다. 그것을 현대적이라고 해야할까요? 마리오 보타는 형태를 단순화시킵니다. 그에게 단순화는 고전을 버리고 현대로 오는 모더니즘의 길이 ‘아니라’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건축은, 모든 예술 작품이 그렇듯, 그 자체로 상징적이어야한다.” 이것이 마리오 보타의 건축에 대한 기본 개념입니다. 좀 어렵군요. 1986년 티치노에서도 시골인 마기아 Maggia 골짜기의 모뇨 Mogno라는 마을에 산사태가 나 17세기에 세워진 교회가 무너졌습니다. 새 교회를 짓는 일이 마리오 보타에게 주어졌는데, 그는 십자가도 첨탑도, 교회를 떠올리게 하는 어떤 구체적 형상도 없는, 사선으로 깎은 원통 하나를 제안합니다. 상징 그 자체인 것입니다. 이 건물은 가장 원초적인 형태를 가지기 때문에 현대적인 동시에 고전적입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남는 것, 그것이 마리오 보타가 마침내 기도企圖하는 것입니다. 시대를 초월하기 위해서 자잘한 장식의 유행은 과감히 포기해야 합니다. 모든 유행은 곧 낡은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건물은 엄청난 논쟁을 불러왔고, 몇 번 좌초될 위기를 겪었습니다. 결국 마리오 보타의 가장 중요한 대표작이 되었고, 이 마을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요.

3. 저 육중한 벽에 황금 열쇠가 들어있다!
  모뇨의 교회가 논쟁과 공격에 휩싸여 진척이 더뎌진 동안, 보타는 의외의 우군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가운데 에기디오카타네오 Egidio Cattaneo 씨는 티치노의 해발2000미터가 넘는 몬테타마로 Monte Tamaro에 스키 리프트를 가지고 있는 부호였죠. 카타네오 씨는 보타에게 이 만년 설 덮인 산 정상에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내를 기리는 교회를 세워달라고 주문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건축가의 뜻에 맡기겠다고 했죠. 그는 이 시대 가장 멋진 패트런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리오 보타의 최대의 걸작 그리고 르코르뷔지에의 롱샹 대성당 이후 역사에 새겨질 만한 최고의 예배당이 세워진 것입니다. 이 건물의 놀라움은 <도베> 다음 호에서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만, 두껍고 육중한 벽과 조그마한 창문과 돌의 재질감이 눈에 뜁니다. 로마네스크건축의 특징이지요. 마리오 보타는 로마네스크 교회 건축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는 벽에 엄청난 공을 들입니. 교보 사옥도 마찬가지지요. 어떤 사람들은 “무지막지해 보인다”고 비난을 합니다. 사실 이것은 내부 interior와 외부 exterior의 경계를 무터트려 온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의 흐름에 직통으로 역행하는 일대사건입니다. 그러나 마리오 보타는 외부, 즉 주변으로부터 내부를 분리하는 것이 건축물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라고 고집스럽게 주장합니다. 외계의 변화에 의연하게 맞서는 것이 건축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꺼운 벽 안에 인간의 내면처럼 고요하고 안정된 공간, 새로운 느낌을 가지고 있는 공간을 탄생시키는 것이 건축가로서 그의 역할입니다.

4. 뒷면 같은 앞면
  교보생명 사옥은 정문이 흔히 보는 건물의 뒷면 같은 벽에 나 있습니다. 건물을 특징짓는 가로로 길게 파인 창문들은 옆면에 있죠. 정면에서 눈에 띄는 것은 오직 입구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로마네크스 건축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고딕 양식 교회에서 가장 휘황찬란하게 장식되는 곳은 장미창이라 불리는 파사드 facade, 즉 대문 위의 스테인드글라스입니다. 반면 로마네스크 건축에서는 정면에 굳게 닫힌 문 외에는 아무 것도 볼수가 없죠. 마리오 보타는 건물의 정면을 아주 공들여서 만들지만, 결국에는 공들인 벽체로 파사드를 꽁꽁여밉니다. 가는 홈이나 작은 창문이 어렵사리 비집고 날 뿐이죠. 소란스럽고 번잡한 외부로부터 내면을 보호하는 것이 건물에서 정면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1996년 완공된 제네바의 브뤼셀 람베르은행 Bruxelles Lambert Bank 사옥에서도 두 개의 기둥이 나란히 서 있는듯한 폐쇄적인 정면을 볼 수 있습니다.

3. 멀리서 보라!
  “교보 건물 말야? 멀리서는 봤는데 가 보지는 못했어….” 하고 주저하실 필요는없습니다. 멀리서 보는 것은, 마리오 보타 건물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과정이니까요. 자고 일어나면 멀쩡한 건물을 무너트리고, 새 건물으 지으며 비대해지는 서울은 첨단 도시를 향해 허덕허덕 쫓아갑니다. 도심의 고층 빌딩들은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의 작품이지만, 마치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던 바벨 탑처럼, 소통을 거부한 채 혼잡스러운 소음을 웅웅대고 있을 뿐입니다. 가슴 아픈 일이죠. 건축가들이야 작품만 남기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유린당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니까요. 마리오 보타의 건축은 땅주변, 미리 서 있는 건물의 표정들을 읽는 데서 출발합니다. “건축을 한다는 것은 현실을 변화시키는 일이므로. 나는 모든 대지가 그 내면에 고유한 변형 가능성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풍경은 스스로 다른 풍경이 되고자 하는 갈망을 품고 있다. 건축가는 그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에 다가가야 하는 책임을 지닌 자다.” 마리오 보타는 주변의 건물과 가로街路들을 꼼꼼하게 파악합니다.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 SFMOMA이나 도쿄의 와타라-움 Watari-Um이 대표적입니다만, 도심에 들어선 그의 건물을 보면, 그 건물로 인해서 주변 전체의 인상이 바뀜을, 주변의 모든 건물들이 이 건물을주심으로 하나의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냄을 알 수 있습니다. 건물만 보지 마십시오. 건물이 들어선 풍경 전체가 그의 건축입니다.

6. 어느 밤에 저 벽돌을 다 쌓았단 말인가?
  그 육중한 체구를 이루는 벽돌들의 패턴이 물결처럼 자잘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교보 사옥의 벽면, 마리오 보타는 원래돌과 벽돌의 건축가입니다. 대리석을 비롯해, 언제나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석재를 조사한 다음 그 재료를 이용하죠. 붉은 벽돌도 자주 애용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교보빌딩도 벽돌처럼 보이지만, 실은 놀랍게도 벽돌 형태의 타일이라는군요! 그 자체로 건물의 성격을 만들어 내고 있는, 이 곰삭은 검붉은 빛깔을 만들어내는 데 시험제작만 수십 번을 했다고 합니다. 패턴의 형태에 따라 사용된 타일의 종류도 80여 가지. 각 가짓수 별로 따로 틀을 만들고, 380여 만 장의 타일을 만든 다음 색이 잘못 나온 100만 장을 버리고 난 270여 만 장이 건물에 사용되었습니다. 그 자체로 기념비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규모인 것입니다.

7. 줄무늬 건축가
  교보 사옥에도 어김없이 줄무늬는 등장했습니다. 입구의 원기둘이 바로 그것이죠. 흰색과 짙은 청회색의 가로 줄무늬는 세계 어디서든 마리오 보타의 건축물임을 나타내게 하는 징표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젤의 스위스 통합은행 Union Bank of Swiss 사옥과 도쿄의 와타라-움에서 줄무늬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마리오 보타의 건물이 아닌데 줄무늬가 있다면, 표절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대리석 가로 줄무늬는 보는 사람들의 뇌리에 아주 강한 인상을 박아 놓습니다. 기하와 비례, 순수하고 절대적인 형상의 견고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마리오 보타의 신념을 강력하게 지원해 주는 무기들이라고 할 수 있죠.

8. 야간 공략 작전
  교보 사옥을 즐기기에 멋진 시간을 꼽으라면, 해질녘을 추천하겠습니다. 해가 다 떨어지기 전, 붉은 빛이 발산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한껏 즐깁니다. 하이라이트는 그 어둑어둑한 건물 위에 자를 대고 칼로 그은 듯 줄을 지어 가로로 가늘게 파인 창문들로부터 빛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입니다. 빛은 마리오 보타가 무척 아껴 쓰는, 비장의 무기에 가깝습니다. 빛이 들어오는 구멍과 나오는 구멍을 극도로 제한함으로써 빛의 역할을 극대화합니다. <호두까기 인형>등 보타가 만들었던 몇 개의 연극 무대에서도 이런 인상을 얻을 수 있죠. 가는 틈으로 비어져 나오는 불빛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처럼 현란하게 흥청대는 강남 한복판에서 경건한 기장을, 고요한 시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정말 멋지군요!

9. 저나무가 수상하다
  교보 현관 위, 두 동의 입방체 사이에 나무가 두 그루 심겨있습니다. 마리오 보타 건물의 옥상에 나무가 처음 등장한 것으 1980년대 초 루가노의 사무용 건물 란실라 Ransila 1에서 였습니다. 그 착상의 기원은 이탈리아의 루카 Lucca에 있는 한 옛 탑에 있습니다. 이 탑은 별로 뛰어난 볼거리가 아니었는데, 어느 날 그 위에 나무가 자라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아무튼 나무는 수백년 동안 자랐으며, 점점 장엄해졌죠. 보타는 이 나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건물 위의 나무는, 자연을 정복한 인간이라는 모더니즘의 이상을 완전히 뒤바꾸어, 인공을 위의 자연을 표상합니다. 또한 건축이 단지 땅과의 관계로만 세워지는 것이 아님을 또한 하늘과의 관계로 세워지는 것임을 우리에게 일러주지요. 프랑스 이브리 Evry의 대성당 Cathedral of the Resurrection(1988~95)의 원통형 가장자리에도 나무들을 심었습니다. 후에 사람들은 그 나무들을 보며 예수의 가시 면류관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10. 왜 원통을 사용하지 않았나?
  대리석 줄무늬, 벽돌과 함께 마리오 보타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것이 바로 비스듬히 잘라낸 원기둥입니다. 앞에서 소개했던 모뇨의 성당 이래 프랑스 이브리의 대성당에서도 쓰였죠. 원형은 보타가 모든 형태 가운데 가장 원초적이고 완전하다는 점에서 각별히 좋아하는 형태입니다. 보타의 건축 세계에서 비스듬히 자른 원기둥은 그 자체로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종교적 공간을 의미합니다. 즉 상업 건물이나 공공 건물에서는사용되지 않았죠. 보타는 20세기 이전까지 인류 건축의 발전은 종교적 건축물이 이끌어왔다고 지적합니다. 경건한 공간, 정화의 공간, 인간의 영혼을 감싸고 보호해 줄 견고한 안식처를 만들어내는 것이 한 시대 건축이 가장 고민해야 할 화두였던 것입니다.
롱샹 대성당 이후, 20세기 건축의 흐름 속에서 상업 건물과 공공 건물이 종교건축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여전히 전문가들이 꼽는 한국 최고의 건축물에는 언제나 부석사 무량수전과 절두산 성지 순례성당이 나란히 꼽힙니다. 결국 사람들에게 성스러운 감정을 자아내는 것보다 더 뛰어난 건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 도시에서 훌륭한 종교 건축이 지어지는 것은 더 이상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 경건함, 긴장과 안식, 자기 정화, 영속성에 대한 의식을 일깨워주는 공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특히 몸과 영혼이 몹시 아플 때, 그런 공간을 본능적으로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가정이 그런 공간이기 때문에 보타는 개인 주택을 가장 열심히 만들어 왔습니다. 오늘날 미술관과 공연장 역시 그런기능을 나누어 대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미술관과 공연장 역시 그런 기능을 나누어 대신하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의 한가운데에 원통을 박아 넣은 것은 바로 그 까닭입니다. 지금 마리오 보타의 스타일은 세계를 휩쓸고 있는 트렌드입니다. 그리고 그가 바라는 대로, 그의 건물들은 견고하게 지어져 있기 때문에 수백년이 흘러도 역사를 초월해 시대를 증언하는 스타일이 될것입니다. 결코 트렌디하지 않은 트렌드, 정말이지 슈퍼 마리오 보타입니다. “좋지 않을 수 있도록 저항하게 만드는 일종의 도구다. 건축은 인간을 훨씬 능가하는 수명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감수성의 척도로서의 기능을 보유한채, 동시에 과거를 증언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인간 행위다.